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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보(寧波), 바다와 함께 발전한 도시


2020-07-07      글|장진원(張勁文)

닝보시 싼장커우  사진/ 중신사(中新社)
 
해상 실크로드는 만리에 걸쳐 뻗어 있고 고대 세계 무역의 선을 그려내는데, 닝보가 바로 이 항로와 중국 대륙의 연결점 중 하나이다. 수천 수백 년 동안 닝보는 바다 건너 문명과 함께 중국 근대문명의 싹을 틔웠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대외개방에 앞장섰던 닝보는 상호 이익을 추구하면서 동서 교류, 남북 통달의 아름다운 역사를 썼다.
 
2020년 4월 24일 오전, 싱가포르에서 온 40만 톤급 화물선이 닝보저우산항 슈랑후(鼠浪湖) 하역부두 1번에 도착했다. 사진/ VCG

깊은 저력과 역사적 명성을 지닌 도시
동해로 얼굴을 돌려 보면, 바다는 닝보라는 이 도시의 중요한 DNA다. 닝보는 중국의 해안선 중간에 위치해 있다. 9700km2에 달하는 관할 해양 면적은 도시의 육지 면적 만큼이나 넓다. 1500km가 넘는 해안선의 길이는 저장(浙江)성 전체 해안선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5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은 저장성 전체 섬의 5분의 1 수준이다. 따라서 닝보에 오면 바다를 품에 안고 산수를 만끽하는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다. 햇빛, 파도, 모래사장은 세계 각지의 해안도시에서 볼 수 있지만 닝보 같은 3개의 만(灣), 9개의 모래사장, 100개의 섬은 보기 드문 규모의 해양 경관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이 도시에는 520여 종에 이르는 중국에서 가장 맛있는 동해 해산물이 있다. ‘신선하고 짭쪼롬한’ 맛이 일품인 셰차오녠까오 (蟹炒年糕, 꽃게 떡볶이), 훙까오창셰(紅膏熗蟹, 중국식 게장), 총여우하이꽈즈(蔥油海瓜子, 기름 조개볶음) 등의 닝보 음식은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다. 
 
넓은 바다 외에 닝보에는 강, 개천, 호수도 있다. 푸른 산이 군집을 이루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서자풍운, 태호기백(西子風韻, 太湖氣魄ㆍ시후의 풍경과 타이후의 기백)’의 둥첸후(東錢湖)가 있고, ‘발지만중청장립, 현공천장소류분(拔地萬重青嶂立,  懸空千丈素流分·우뚝 솟은 산, 하늘같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의 폭포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강과 호수는 이곳에 평온한 분위기를 더해 도시의 천년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고금을 막론하고 닝보의 핵심 지역은 줄곧 싼장커우(三江口)다. 융장(甬江), 야오장(姚江), 펑화장(奉化江) 세 강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이곳을 여행하면 옛 닝보의 세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이곳에 닝보의 가장 유명한 라오와이탄(老外灘)이 있다. 와이탄을 언급하면 상하이(上海)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닝보의 라오와이탄이 1844년에 등장했으니 상하이보다 20년 빠른 셈이다. 지금은 개조를 거쳐 현지의 유행을 선도하는 거리로 자리잡았다. 거리를 걸으면 건물이 모두 예술 작품 같다. 중국, 유럽, 미국, 독일 등지의 건축 양식이 녹아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 중에는 영국 영사관, 파출소, 천주교당, 오래된 우체국, 저장 세관 등이 있다. 낮에는 다소 조용해 보이지만 밤이 되면 여행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닝보의 더 오래된 역사를 보고 싶다면 웨후(月湖)에 가보아야 한다. 그곳은 항저우(杭州) 시후(西湖) 만큼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닝보에서는 항저우의 시후 같은 곳이다. 이곳은 일찍이 송ㆍ명 시절에 문인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던 도시 안의 산수(山水)로, 예로부터 ‘의관이 배출되는 인재가 풍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절동추노(浙東鄒魯), 문헌의 고장, 교육의 둥지’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닝보 건설의 역사의 절반은 웨후의 공이다’라는 말도 있다. 바로 이 도시 산수의 자양분이다. 닝보 사람들은 ‘경독전가, 시서제세(耕讀傳家, 詩書濟世ㆍ농사를 지어 대물림하고, 시와 책으로 세상을 다스린다)의 품성을 길러왔는데, 바로 웨후 옆 톈이거(天一閣)가 그 점을 증명한다. 
 
‘공부는 힘들지만 장서(藏書)는 더 힘들다’라는 속담이 있다. 닝보의 톈이거는 아시아에 현존하는 역사가 가장 유구한, 가장 오래된 개인도서관이자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 도서관 중 하나이다. 현재 고서적 30여 만권을 소장하고 있고, 그 중 8만여 권이 선본(善本)이다. 이 곳을 걷고 있으면 닝보는 아름다운 도시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산수의 풍경이 아닌, 닝보의 사람, 바로 닝보 사람들의 기상과 소양이라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다. 
 
예로부터 닝보는 인재를 배출하는 지방이었다. 고대에 이곳은 진사(進士)들을 배출한 보배로운 곳으로, 지금은 ‘원사(院士)의 고향’이라고 불린다. 통계에 따르면 닝보 출신의 원사는 총 118명으로 중국 도시들 중에 으뜸이다. 재능 외에도 닝보 사람들은 실천 정신이 강하다. 농경 시대에 닝보는 상업문화가 싹을 틔운 곳이다. 닝보의 상인들은 비범했다. 그들은 회관을 짓고 상방(商幇, 상업 연합회)을 결성했다. 근대 개항 이후 오늘날의 개혁 개방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각지의 중화상회는 닝보 상방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금융에서 항해, 무역까지 다시 항공, 부동산 등의 사업에서 닝보 상방은 세계의 대세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2016년 4월 15일, 동아시아 문화도시·2016닝보의 해가 저장성 닝보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막했다. 사진은 한국 제주전통예술공연개발원의 예술공연팀이 개막식에서 한국 전통 농악인 ‘사물놀이’를 공연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XINHUA

중ㆍ한을 연결하는 우호도시
닝보는 중국 대운하의 종점이자 남단에서 바다로 나가는 유일한 출구이며, 해상 실크로드 동방의 시작점 중 하나이다. 따라서 이곳은 강남수향(江南水鄉)의 온화함과 해양도시의 번화함을 모두 가지고 있다. 예부터 대외교류와 해상무역의 허브로, 조선반도(한반도)와 일본 역시 주요 교류의 대상이었다. 
 
당나라 시대에는 일본과 고려의 많은 승려들이 닝보를 거쳐가거나 저장(浙江) 톈타이산(天台山)에서 중국의 고승을 만나 가르침 받기를 갈망했다. 또는 불교의 성지인 우타이산(五臺山) 등을 순례하여 닝보 불교와 직간접적으로 교류가 발생했다. 동시에, 많은 중국인 승려들은 불법을 전하기 위해 닝보를 거쳐 해외로 갔다. 500여 년 전, 조선인 최부는 제주에서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저장 타이저우(台州)에 표류했는데, 닝보에서 대운하를 따라 북상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가 저술한 <표해록(漂海錄)>은 명나라 시대 중국의 풍토와 인정을 조선에 상세히 소개해 두 지역 사람들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 주었다.
 
중한 수교 이후 닝보는 계속해서 중한 양국 교류 창구의 역할을 담당하며 중한 양국의 도시 외교무대에서 활약했다. 현재 닝보는 한국의 대구시와 ‘우호도시’를 맺었고 순천시와 평택시, 부산시와 ‘우호교류도시’ 자매결연을 맺었다.  
 
2016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서 닝보는 한국의 제주시, 일본의 나라시와 일련의 교류 활동을 공동 개최했다. 개막식, 중일한 예술 공연, 톈이거 포럼, 폐막식에 더해 중일한 청소년 올림픽, 중일한 불교 우호 교류 대회, 닝보·일한 관광시즌 등의 중요 행사들은 ‘동아시아의 의식, 문화교류의 융합, 상대문화 이해’ 정신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그 해에 일본 나라의 <양산백(梁山伯)> 북춤이 닝보에서 선보였고, 닝보의 소백화월극단(小百花越劇團) 노·중·천(老中靑) 3대가 열연한 <양산백여축영대(梁山伯與祝英臺)>가 일본 나라 시민들을 매료시켰다. 그 해 한국 제주의 민속춤인 <영등굿>이 닝보에서 공연됐고, 닝보 융쥐퇀(甬劇團)의 <우렁각시(田螺姑娘)>가 제주에서 선보였다. ‘동아시아 문화도시’의 문화 교류 활동은 중일한 3국의 대중이 ‘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네가 있다(你中有我, 我中有你)’는 문화 원천을 이해하고, 다채로운 민족 문화의 개성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2016년 ‘동아시아 문화도시’ 행사 축하가 끝난 뒤 닝보와 한국, 일본 등지의 연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2019년 10월, 닝보는 한국 서울·양양과 항공편을 개통했다. 이에 한국과 닝보를 항공편으로 잇는 도시는 세 곳이 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닝보 국제선 승객 중 일본, 한국의 승객이 유동인구 선두 3위를 차지했다.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중국을 휩쓸어 닝보와 세계의 연계가 방해를 받았다. 닝보가 전력을 다해 코로나19 방역전을 치를 때 한국과 일본, 영국 등 20여 개 나라의 우호도시와 국제기구들이 닝보에 심심한 위문과 응원을 보내왔다. 그 중 권영진 대구 시장은 위문 전화에서 “우호 도시의 시장으로서, 나와 250만 대구 시민이 함께 기도하고 있다. 대구와 함께하는 닝보시가 하루빨리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시민들이 건강하기를 바란다. 닝보 파이팅! 우한(武漢) 파이팅! 중국 파이팅!”이라는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코로나19 초기 방역 효과를 거둔 닝보시는 당초 돈주머니를 열어 도와주었던 우호 도시에 보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2020년 4월, 닝보시 정부는 방역물자를 구매해 국제우호도시를 돕기로 결정했다. 첫 기부 물자로 이탈리아 피렌체, 피에몬테 지방, 베로나 시에 방호복 6000벌, 의료용 장갑 3만쌍이 보내졌다. 대구시에 방호복 2000벌, 의료용 장갑 1만쌍이 보내졌다. 닝보시 정부 책임자는 위문 편지에 “우리가 비록 멀리 떨어져있지만 여러분의 코로나19 방역 상황과 진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분의 안위를 염려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의 노력 아래 여러분이 빠른 승리를 거둘 것이라 믿는다. 닝보는 여러분과 더욱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기 희망하며, 여러분의 코로나19 방역에 가능한 한 많은 도움을 주어 공동으로 방역 전쟁을 이길 것”이라고 썼다.
 
미래를 포용하는 개방의 도시
현재 상업계 인사들은 닝보하면 닝보저우산(舟山)항을 먼저 떠올린다. 2019년 닝보저우산항의 화물 유동량은 11.2억t을 달성해 11년 연속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컨테이너 물동량은 2753만5000TEU로 글로벌 항구 3위로 도약했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예방·통제가 우선 순위에 있는 만큼 닝보저우산항은 충분한 인력으로 사회물류 수요를 보장하기 위해 항구 구역 작업과 생산, 운행에 ‘제로 스톱’을 결정하고 항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면적인 산업 재개 이후, 닝보저우산항은 빠른 속도로 회복중이다.
 
3월 29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닝보저우산항·촨산(穿山) 항구를 시찰하면서 닝보저우산항의 산업 재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주석은 “닝보저우산항이 먼저 생산을 재개하는 것은 우리 기업의 조업재개를 촉진하고 물류시스템을 회복하며 글로벌 산업사슬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과거 닝보저우산 항구는 닝보항과 저우산항으로 독립된 2개의 항구였다. 두 항구는 비록 같은 해역에 있지만, 같은 수로를 사용해 같은 경제 속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항구의 계획·건설·운영·관리는 서로 분할되어 있어 해안 자원의 배치를 최적화하기 어려웠다. 2003년 1월 시진핑 당시 저장성 당서기는 처음으로 저우산을 방문해 “두 항구의 통합을 가속화하라”고 요구했다.
 
2005년 12월 20일, 시진핑 주석의 결단으로 닝보-저우산항 관리위원회가 출범해 직접 현판을 달았다. 시진핑 주석은 이 자리에서 “항만 건설은 저장성 경제발전의 주축이 될 것이며, 항만 건설은 닝보저우산항 통합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8월, 저장성 하이강그룹(海港集團)이 설립되고, 같은 해 9월 닝보저우산항그룹유한공사가 출범하면서 두 항구는 진정으로 자본을 기조로 하는 실질적 일체화를 이루었다. 2017년 말, 닝보저우산항은 세계 최초로 연간 화물 물동량이 ‘10억톤’을 넘는 대형 항구가 되었다.
 
2019년 닝보저우산항은 육·해상으로 실력을 발휘했다. 육상에서는 컨테이너 해상·철도 다중 연계운송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10여 개의 연계 철도 노선과 여러 개의 회선을 개통하며, 15개 성(省)과 업무를 연계했다. 해상으로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참여국들의 노선 개발 역량을 높이면서 일대일로 관련 노선이 총 89편에 달한다.
 
닝보저우산항 계획 개발 외에도, 닝보는 자체 산업계획과 개방협력의 길에 있어 두 개의 큰 좌표인 ‘246’과 ‘225’라는 닻을 내렸다. 2025년까지 그린 석유화학 공업, 자동차라는 2개의 세계적인 조(兆)급 산업 클러스터를 육성하고, 고급장비, 신소재 전자데이터, 소프트웨어, 신흥 서비스 등 4개 분야에서 국제적인 영향력을 지닌 5000억급 산업 클러스터를 육성하고, 핵심 기초부품, 스마트 가전, 패션 직물 의류, 바이오의약, 예체능 용품,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 등 6개 분야에서 중국 국내의 선도적인 1000억급 산업 클러스터를 육성하는 것이 ‘246’ 목표다.
 
‘225’는 2025년까지 수입·수출 총액이 각각 1조 위안(약 172조원)에 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중 전기기계 및 하이테크 제품의 수출, 에너지원 및 대량 상품의 수입이 각각 5000억 위안에 달하고,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 디지털무역, 서비스무역, 양질의 상품 수입, 중계 무역이 각각 2000억 위안에 달할 것이다. ‘246’과 ‘225’, 하나는 공업의 기초를 대표하고, 다른 하나는 무역을 대표하여 함께 닝보의 미래라는 양날개로 비상할 것이다. 닝보는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새로운 건설붐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글|장진원(張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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