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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커머스 물결을 이끄는 신 유수청년(留守青年)


2020-05-15      글|장진원(張勁文)

위안구이화는 소를 방목하고 있다사진/위안구이화 본인 제공


중국의 인터넷 인프라가 발전하면서 인터넷은 사람들에게 정보 고속도로를 놓아주었다.빈곤지역에서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인터넷이 보여주는 드넓은 세계를 있고, 아이디어와 사업을 넓힐 있으며, 농촌 생활을 기록하고 공유할 있다.


농촌은 보여지기만 하면 연결이 가능해지고, 연결만 하면 수많은 가능성이 탄생할 있다. 이런 연결은 개인의 성장을 가져왔고 산촌의 변화를 이끌었다. 중국 구이저우(貴州) 사는 21세의 위안구이화(袁桂花) 바로 이런 전설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귀여운 외모의 위안구이화는 평범한 콰이서우(快手, 동영상 ) 이용자에서 인기 폭발한 비디오 커머스 운영자로 성장했고, 유수청년(외부활동 대신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선택한 청년을 일컫는 인터넷 용어)에서 마을 사람들도 함께 부유하게 만드는 창업 선봉자가 됐다. 그녀는 콰이서우팬들에게는 ‘잘 웃는 쉐리아(愛笑的雪莉吖)’지만 고향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아가씨’로 통한다.


고향을 떠날 없었던 ‘효녀’

위안구이화의 고향은 구이저우성 첸둥난먀오주둥주(黔東南苗族侗族)자치주 톈주(天柱) 안에 있다. 자치주는 산봉우리가 굽이굽이 이어져 있고 계곡이 많으며 나무가 빽빽하고 곳곳에 하곡이 연결돼 있다. 기이하고 복잡한 지형, 풍부한 수원과 물종이 있어 마치 중국 남쪽 지역에 있는 고요하고 웅장한 무릉도원 같다.


이곳은 무릉도원처럼 아름답고 멀다. 단절된 환경은 산간지역 사람들이 외부 세계로 나가는 발걸음을 가로막았고 샤오캉(小康)으로 향하는 길에 철문을 놓았다. 이곳은 구이저우성에서 빈곤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이곳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생존이었다. 위안구이화의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에겐 오빠와 언니가 있다. 오빠는 건강이 좋고 언니는 어려서 소아마비에 걸렸다. 부모님은 우리 셋을 키우는 정말 쉽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님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기집 농사는 물론 여기저기 다니며 목재를 나르고 광석을 운반하고 창고를 지키는 온갖 일을 다해야 했기 때문에 그녀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할아버지는 대나무로 채롱과 젓가락 만드는 것을 가르쳐주었고 할머니는 쿠베바 채집을 알려주었다. 어린시절 그녀는 노동의 기술을 많이 배워 또래보다 조숙했다. 그러나 그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사는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그녀의 집과 사정이 비슷했다.


어린 시절 위안구이화에겐 톈주현이 세상의 전부였다. 그녀는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너무 이야기였다. 그녀처럼 바깥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아이에겐 가지 길이 있었다. 대학입학시험을 통해 산을 벗어나거나 외지로 일하러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두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야 했다.


2016 18세의 위안구이화는 대학입학시험을 보았다. 성적을 받아본 그녀는 자기 성적에 만족하지 못했고, 입학 지원을 포기했다. 부모님은 빚을 내서라도 그녀가 재수하는 것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마을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타향으로 떠났지만 그녀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집이 정말 어려웠다. 바깥 세상은 아름다웠지만 부모님이 너무 고생을 하셔서 부모님 곁에 남고 싶었다. 그래서 18세의 위안구이화는 유수 인생을 시작했다.


셀카를 찍고있는 위안구이화 사진/위안구이화 본인 제공


영상 콘텐츠의 세계로 뛰어들다

위안구이화에게 유수 생활은 단조로웠지만 그렇다고 삶의 즐거움을 잊지는 않았다. 집안의 농사를 돕는 외에 ‘콰이서우’라는 동영상 앱을 자주 이용했다. “고등학교 2학년 콰이서우를 처음 접했다. 수업 시간에 콰이서우 이용자들이 업로드한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거나 사람들의 재능이 담긴 동영상을 보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유수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만난 사촌오빠 양우위안(楊武元) 말이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 양우위안은 저장(浙江)성에서 전자상거래를 했었고 고향으로 돌아와 소규모 제지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위안구이화의 눈에 사촌오빠는 ‘아는 것도 많고 사업적 마인드도 있으며 대담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콰이서우 애용자였던 양우위안은 위안구이화도 앱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계정을 운영해보라고 제안했다.


사촌오빠의 말에 위안구이화는 겁이 났다. “나는 재능은 없지만 우리의 진짜 생활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산속 생활의 정취를 소개할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콰이서우 계정을 만들고 ‘잘 웃는 쉐리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쉐리’라는 이름은 중국의 인기 미스터리 소설인 <귀취등(鬼吹燈)> 주인공 이름이다. “나는 쉐리를 좋아한다. 용감한 쉐리가 나에게 힘을 주길 바랐다. 이름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 위안구이화는 이렇게 말했다.


2017 6 18 위안구이화는 번째 동영상을 업로드했다. 그날은 마침 아버지의 날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소를 방목하러 가면서 올케에게 동영상을 마음대로 찍으라고 했다. 그날 잠자기 그녀는 자기가 올린 동영상 클릭 수가 50만을 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매우 흥분됐고 힘이 됐다. 산속 생활에 대해 흥미가 있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계정을 열심히 운영하기 시작했다.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오고 물에 들어가 미꾸라지를 잡으며 어머니와 가정식을 만드는 그녀의 영상에는 원시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해 그녀의 생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 영상 구독자 수가 수백 명에서 10만여 명으로 늘었다.


평범한 유수청년에게 고정적인 소득원을 찾는 것은 매우 절박한 일이다. 위안구이화가 집에서 콰이서우 계정을 운영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 부모님은 ‘집에 틀어박혀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 부모님은 전통적인 사람이고 인터넷이라는 것을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생활을 공유하고 싶었고 구독자들도 좋아했다.


처음에는 콰이서우 앱과 돈벌이를 연결시키지 못했다. 그녀는 동영상 업로드와 생방송 형태로 자신의 일상을 공유했다. 어느 그녀의 어머니가 시골 풍미가 가득한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생방송 하는데 팬이 “맛있어 보이는데 조금 있을까요? 하고 물어왔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 위안구이화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나는 ‘그럼요,가능하죠, 주소 알려주세요’ 라고 대답했다. 뒤로 집에서 육포, 매두부(黴豆腐), 쌀로 만든 술인 미주를 만드는 과정을 생방송 때면 ‘그거 파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묻는 사람이 많아지자 이상 무료로 수가 없어졌다.


딸이 하루 종일 인터넷만 하고 집에서 만든 매두부와 말린 죽순 같은 것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부쳐주는 것을 부모님은 걱정스러워서 “사람에게 속지 말라”고 조언했다.그러나 위안구이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에게 “꼭 돈을 테니 두고 보세요! 하고 말했다. 그녀는 어머니와 ‘판매 시합’을 했다. 어머니는 매두부 100병을 시장에 들고 나가 팔고 그녀는 인터넷 생방송을 하면서 팔았다.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위안구이화는 30분도 되어 100병을 팔았지만, 시장에 나간 어머니는 하루 종일 10 밖에 것이다.


위안구이화가 매두부100병을 돈을 어머니에게 드리자 어머니는 기뻐하면서 안심하셨다. “우리 대단하다. 마디로 그동안 ‘제대로 직업이 없다’는 가족의 우려가 깨끗이 사라졌고 그녀 자신도 비디오 커머스라는 새로운 방향을 찾게 됐다.


이후 위안구이화는 하루에 1-2, 1시간 정도 생방송을 했다. 때론 앞에서, 때론 산에서, 때론 시장에서 했다. 집에서 만든 육포, 매두부, 말린 생선, 말린 죽순, 고사리,미주 토산품이 생방송의 ‘총아’가 되었고 생방송을 보는 팬들이 주문을 했다. 게다가 최근 구이저우성은 ‘촌촌통(村村通) ‘호호통(戶戶通) 도로 건설 사업이 진행돼 도로 사정이 좋아지고 물류 서비스도 현지 마을을 커버하게 되어 운수의 ‘모세혈관’이 통하게 됐다. 덕분에 위안구이화의 비디오 커머스도 날개를 달았다. 그녀는 돈으로 집의 돼지 우리와 양어장을 수리했고, 마을 사람의 토산품 판매도 도왔다. 짧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의 구독자는 345만명으로 늘어났다. 생방송을 통해 마을 사람들의 토산품도 200여만 위안( 3 여원) 정도를 판매해주었다.


위안구이화는 어머니와 함께 과원에서 과일을 따고 있다사진/위안구이화 본인 제공


고향의 ‘창업 선봉’이 되다

비디오 커머스가 성공하자 위안구이화는 다른 아이디어가 생겼다. 바로 마을 사람들의 창업을 돕는 것이었다. 그래서 위안구이화는 공동 창업을 계획했다.

구이저우 깊은 산속에 ‘혈등과(血藤果, 대혈등)’라는 열매가 자란다. 열매는 먹을 수도 있고 약용으로도 쓰이며 영양가가 높아 현지 먀오족 사람들은 ‘미용과 장수의 열매’라는 뜻인 ‘부푸나(布福娜)’라고 불렀다. 위안구이화는 생방송을 통해 야생 열매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기에 동안의 비디오 커머스 경험이 더해져 열매가 시장성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녀는 마을의 33가구와 함께 합작사를 설립하고 60() 규모의 땅에 혈등과를 심었다. 위안구이화는 “이 사업이 성공하면 합작사는 45 위안 정도의 수입을 거둬 마을 주민은 빈곤에서 벗어나게 되고 ‘혈등과 마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창업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합작사는 생각하지 못한 많은 문제에 부딪쳤다. 마을 사람들은 혈등과를 인공 재배해본 적이 없어서 꽃가루 받이와 해충 제거 문제 해결에 많은 힘을 쏟아야했고 생산량도 많지 않았다. 2018 1 과수가 열매를 맺자 위안구이화는 다시 비디오 커머스로 판매했고 1시간도 1000건을 팔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혈등과가 고객에게 배달되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부패한 것이었다. “나는 제부와 신선도 유지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시험을 해보기도 했다. 열매를 택배상자에 넣어 보내면 1주일 뒤에도 변질되지 않았다. 그리고 열매를 때도 익은 것을 따지 않았다. 그러나 고객이 받은 것에는 상한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배상을 해야 했고 창업도 실패했다. 고향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위안구이화가 좌절을 맛보고 있을 때인 2018 9 그녀는 콰이서우 ‘행복 향촌 창업학원’의 입학통지서를 받았다. 입학통지서를 받은 위안구이화는 처음으로 자치주를 떠나 베이징으로 창업교육을 받았다. 전반기의 고객 발굴, 시장 분석에서 후반기의 매출 통계까지, 위안구이화는 많은 것을 배웠고 창업 성공자들의 강좌에서 용기를 얻었다.


2018 9위안구이화는 콰이서우의 요청으로 베이징에 와서 ‘행복 향촌 창업학원’의 트레닝에 참가했다사진은 위안구이화는 창업학원에서 자기의 창업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위안구이화 본인 제공


기간은 마침 중국 사회 각계각층에서 농촌 창업을 지원하던 시기여서 고향에서도 전자상거래 창업자들이 많아졌다. 위안구이화는 고향 사람들의 학습 대상이 됐고 수많은 유수청년 아니라 외지에서 일하던 청년들도 그녀에게 연락을 해와 창업 방법을 문의했다.위안구이화는 주변 사람들의 비디오 커머스를 돕기 시작했다. “내 올케는 선전(深圳)에서 일할 달에 최고 6000위안을 벌었다. 그러나 비디오 커머스를 시작한 뒤로 달에매출 4 위안을 올렸다. 때를 말하면서 위안구이화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위안구이화에게는 무대와 많은 배움의 기회가 생겼다. 2019 8 톈주현은 전자상거래협회를 설립했고 그녀가 협회 부회장에 선출됐다. 조사 결과 고향의 전자상거래 창업자들은 좋은 제품을 가졌지만 마케팅 방법과 기술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전자상거래 분야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다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위안구이화는 2019 10 저장성 이우(義烏) 있는 소상품 시장을 방문해 점포의 매대, 가공 공장을 둘러보았고 온라인 쇼핑 스튜디오도 견학했다. “세상은 정말 너무 크다. 고향에서 나는 나름 운영 방식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성숙한 전자상거래와 비교해보니 우리에게 개선과 상승의 공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 위안구이화에게는 바깥 세상을 경험할 경제적 기반이 마련됐지만 그래도 많은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싶었다. 2018 10 그녀는 가족과 함께 도원 객잔 건설에 착수했다.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농촌 출신이다. 사람들은 마음 속에 저마다의 파라다이스가 있을 것이다. 나는 외지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집으로 돌아온 같은 느낌을 주고 싶다. 수년 동안 창업 전선에서 열심히 일한 작은 아가씨는 여전히 예전처럼 용감하고 강인했으며 소박함과 천진함을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글|장진원(張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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