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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함께 숨쉬는 ‘그림자 인형극’


2020-01-08      글|장진원(張勁文)

‘화인 장시민 라오창 그림자극단’에서 상연한 그림자극 <화웅의 목을 베다> 사진/추다리(裘大力)

‘피영극(皮影劇)’이라 불리는 그림자극과 ‘목우극(木偶劇)’이라 불리는 인형극은 중국인들에게 언제나 어린 시절의 즐거운 웃음소리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대나무 막대기에서 너울대며 춤추는 그림자는 어느새 역사 속 주인공으로 탈바꿈하고, 가느다란 실에 달려 움직이는 인형은 전설 속 요괴와 신령들로 다시 태어난다. 오려낸 인체 윤곽과 가죽으로 만든 인형, 여기에 공연가의 설창(說唱)과 흥겨운 음악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진 중국 전통문화의 진한 향수가 담겨 있다.
 
지난 10월 열린 ‘베이징(北京) 타이후(臺湖) 그림자인형극 주간’ 행사는 중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그림자인형극이 살아 있는 문화로서 후대에 이어지고 넓은 국제무대에서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행사 기간 베이징 타이후공원, 런이(人藝)실험극장, 중국인형극장, 중앙희극학원 둥청(東城)캠퍼스 내 극장 등에서는 국내외 18개 초청 극단과 62차례의 그림자인형극 전시·공연, 108차례의 야외공연을 비롯해 수시로 열리는 그림자인형극 공방, 150명에 달하는 예술가들, 2회에 걸친 국제그림자인형극 포럼 등을 만나볼 수 있었다. 중국과 세계 각국에서 온 그림자인형극 단체들은 고전과 혁신을 넘나드는 전시와 공연 활동을 통해 그림자인형극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양한 각도에서 표현했다.
 
관객들이 그림자인형극 주간 행사 공연을 즐겨보고 있다. 사진/추다리

그림자인형극의 유래
그림자극과 인형극을 아울러 일컫는 ‘그림자인형극’은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등지를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다. 특히 중국의 그림자인형극은 고대 중국인이 발명한 전통 민간예술이다. 실제 사람이 나무로 만든 인형과 가죽으로 만든 캐릭터를 조종해 공연을 펼치기 때문에 ‘꼭두각시극(傀儡劇)’으로도 불린다.
 
현존하는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인형극은 약 2000년 전 서한(西漢) 때부터 시작됐다. 1978년 산둥(山東)성 라이시(萊西)현 한나라 고분 발굴작업 중 서한 시기 제작된 실물 인형이 발견됐는데, 인형은 서거나 앉거나 무릎을 꿇을 수 있을 정도로 움직임이 자유로웠다. 중국의 그림자극은 약 1000년 전 송나라 때부터 이미 상당 수준 발달해 있던 공연극의 한 종류다. 남송의 맹원로(孟元老)는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이라는 책에서 그림자극에 대해 “공정하고 충정한 자는 올곧은 용모로 표현하고, 간사하거나 사악한 자는 추악한 형태로 새겨 선하고 악한 모습을 모두 표현할 수 있었다”고 평했다.
 
인형극과 그림자극은 역사적 기원이나 예술 형태, 연출 방식, 줄거리, 미적 기준, 민속 금기 등의 면에서 모두 대단히 유사하다. 대부분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신비로운 전설이나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 얽힌 고사 등을 소재로 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고난도 조종기술과 독특한 노랫가락, 풍부한 형태의 캐릭터를 완성하며 점차 공연 장르로서의 요건과 특징을 갖추게 됐다.
 
인형극과 그림자극이 예로부터 민간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까닭은 특유의 줄거리 구성과 음악에 맞춘 노랫가락, 표현 기교 등 외에도 일반 서민들의 생각과 감정이 들어있고 이들의 꿈과 희망이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극중 인물의 엇갈리는 운명과 줄거리 전개에 따라 함께 울고 웃었다. 또 즐길거리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낮에 인형극을, 밤에는 그림자극을 상연하곤 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낮에는 인형이 기승을 부리며, 밤에는 소가죽이 요괴처럼  움직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전통문화로서 박물관에 ‘박제’되는 대신 중국 전역과 세계 무대를 당당히 누비고 있는 그림자인형극은 오늘날 전승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이번 베이징 (타이후) 그림자인형극 주간에도 다채로운 형태의 공연이 펼쳐지며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특히 올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혁명 시기 일화를 소재로 한 수많은 그림자인형극은 ‘사회 교화’의 기능도 충실히 수행했다.
 
그림자인형극 주간행사는 ‘푸젠(福建)성 취안저우(泉州)시 망석중이극(줄을 매단 인형극) 계승·보전센터’에서 기획한 현대 망석중이극 <철창의 나비>로 화려한 막을 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직전 8세의 주인공 샤오뤄보터우(小蘿蔔頭)와 그의 부모가 충칭(重慶)의 거러산(歌樂山) 바이궁관(白公館)감옥에 갇혔던 당시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들은 철창 밖 자유로운 삶을 몹시도 갈망했지만 거기에는 ‘샤오화(小花)’라는 아름다운 나비 한 마리만 있을 뿐이었다. 극은 낭만적인 풍치를 자아내는 기법과 망석중이의 예술적 특성을 활용해 옥중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아름답고 숭고한 정서를 전달했다. 샤오뤄보터우는 건국 직전 부모와 함께 살해 당해 중국 역사상 최연소 혁명열사로 기억되는데, 그의 짧고 파란만장한 일생은 관객들의 가슴을 깊이 파고든다.
 
<철창의 나비>처럼 중국의 혁명 이데올로기를 소재로 하는 이른바 주선율(主旋律)극 외에도 행사에는 중국 전통문화를 활용한 갖가지 콘텐츠로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화인(華陰)시 라오창(老腔, 그림자극의 일종) 보전센터의 ‘장시민(張喜民) 라오창 그림자극단’에서 기획한 <화웅의 목을 베다(斬華雄)>는 무대 앞에서 펼쳐지는 그림자극과 무대 뒤의 노랫가락이 조화를 이루는 공연이다. 무대막 아래에서는 소가죽으로 만든 캐릭터가 배우의 조종을 통해 이리저리 부드럽게 움직이고, 여기에 맞춰 구성진 노랫가락이 이어지다 순간순간 고조되며 관우가 화웅의 목을 벨 때의 고사를 더욱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이어 악기 소리, 발 구르는 소리, 의자 부수는 소리, 배우들이 내지르는 고함소리들이 한데 뒤섞여 땅이 꺼질 듯한 기세로 온 무대를 울린다. 현장의 관객들은 어느새 장엄한 연출과 넘치는 박진감에 푹 빠져든다.
 
이밖에도 남파(南派)의 인형극 ‘포대희(布袋戲)’로 유명한 ‘진장(晉江)시 장중(掌中)인형극 보전·계승센터’에서 기획한 <시공단안(施公斷案)>과 ‘청두(成都) 선샤오서우(沈曉手) 영화문화 콘텐츠’의 그림자인형극 <우리들의 마을>, ‘베이징 아름다운 어린 시절 인형극단’에서 기획한 인형극 <봄을 알리는 황금닭>·<조손대려(祖孫擡驢)>·<110과 119>, ‘베이징 루이이(睿藝) 문화콘텐츠’에서 제작한 아동극 <환상의 섬 어드벤처> 등이 관객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취안저우시 망석중이극 계승·보전센터’의 망석중이극 <철창의 나비> 사진/추다리
 
국제 문화교류의 매개체
올해 주간행사에서는 각국의 극단에서 선보인 공연에도 많은 눈길이 쏠렸다. 여러 나라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에 이번 행사는 국제적인 그림자인형극 교류의 장이자 세계 그림자인형극의 화려한 부활을 함께 하는 자리가 되었다.
 
10월 2일 진행된 개막식 당일에는 벨기에의 ‘배꼽극단’이 그림자극 <에스프레소 서커스단>을 선보였다. 두 명의 그림자인형극 배우가 무대 뒤에서 250개가 넘는 캐릭터를 조종하고 다재다능한 음악가 한 명이 무대 앞에서 캐릭터의 동선에 맞춰 음악을 반주한다. 이 작품은 서정적이면서도 특이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관객들에게 이상적인 초현실주의의 이미지를 전달했다.
 
한쪽의 장막극장에서는 일본 ‘모찌노샤(望ノ社) 극단’에서 준비한 그림자극 <우주 하마>가 상연됐다. 환경오염 문제를 소재로 다룬 이 작품은 지구를 구하고자 하는 인류의 ‘막연한 희망’에 따라 하마 한 마리가 로켓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 우주를 누비는 신비한 모험 이야기를 그렸다.
 
아울러 올해는 초청을 받아 참가한 그리스, 네덜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등 세계 각지의 그림자인형 전문극단들이 중국에서 활발한 공연과 교류활동을 펼쳤다. 그리스의 ‘꼭두각시 극장’과 ‘베이징 런이(人藝) 실험극장’이 선보인 망석중이극 <음악의 현>에서는 총11개의 망석중이와 2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망석중이와 배우들은 무대에서 여러 가지 동작을 통해 흥미진진한 ‘글로벌 음악회’를 펼친다. 불가리아의 ‘인형극실험실 희극단’에서는 신체인형극 <나, 시시포스>극을 상연했다. 이 작품은 영원히 바위를 산 위로 밀어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 이야기를 재현하면서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묵직한 철학적 고민을 던져 객석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일본 모찌노샤 극단의 그림자극 <우주 하마> 사진/추다리

그림자인형극은 사실상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에도 대외교류의 큰 역할을 담당했다. 중국은 그림자인형극 교류를 통해 관련국들과 친분을 쌓아가는 동시에 중국 그림자인형극의 자체적인 발전도 도모했다.
 
그러나 건국 이후에는 여러 가지 국제정세적 원인으로 교류대상이 구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로 제한됐다. 당시 해외 인형극은 주로 아동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구소련이나 동유럽 등은 인형극에 아동에 대한 교육적 요소를 넣을 것을 직접적으로 명시하기도 했다. 반면 당시 중국의 그림자인형극은 여전히 전통적인 지방극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중국 예술가들은 그림자인형극과 관련한 국제 교류를 계기로 본격적인 모색에 나섰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장섰던 중국의 ‘상하이(上海) 인형극단’은 아동에게 적합한 인형극을 잇따라 기획·창작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성과 중 하나로 중국의 인형극 영화 <신필(神筆)>이 1956년 10월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린 제1회 국제아동영화제에서 우수아동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그림자인형극은 국가의 지원 하에 고유의 매력과 깊은 문화적 가치를 무기로 해외로 적극 뻗어나갔고, 중국 각지의 문화교류 활동과 대규모 행사의 ‘단골메뉴’로 자리잡았다. 특히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때 상연된 취안저우의 망석중이극을 지켜본 세계인들은 붉은색, 초록색, 검정색, 하얀색 4가지 색의 갑옷을 입은 ‘장군들’이 높이 4m, 면적 20m2 남짓한 무대에서 펼치는 공연에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벨기에 ‘배꼽극단’에서 상연한 그림자극 <에스프레소 서커스단> 사진/추다리

하지만 시대가 변해가며 세계 여러 나라의 그림자인형극도 적잖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영상기술의 발전과 보급으로 인해 시청각 오락물이 질적인 도약을 이룬 탓이 가장 크다. 전통적인 무대에서 이뤄지는 공연인 그림자인형극은 이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림자인형극은 조종기술을 익히기 어렵고 수입도 적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잘 배우려 하지 않아 계승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다행히 2011년 11월 27일 중국 그림자극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작 명단에 등재되었고, 2012년에는 취안저우의 망석중이극과 장저우(漳州)·진장(晉江)의 포대 인형극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우수실천자 목록에 등재됨에 따라 중국의 그림자인형극은 다시 한번 사회적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중국의 그림자인형극은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점점 더 발전하고 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류 전개 방식도 날로 새로워지고 있다. ‘후난(湖南) 인형그림자극 계승·보전센터’와 프랑스의 르네상스음악 전문앙상블 ‘둘스 메무아(Doulce Mémoire)’가 공동으로 제작한 그림자극 <팬더 성장기>는 중-불 문화 교류의 커다란 성과로 평가된다. ‘양저우(揚州) 인형극단’은 아르헨티나 인형극 공연가들과 함께 <정글북>을 공동 제작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때 상영된 ‘베이징의 8분’에서는 쓰촨(四川)의 대형 인형극과 현대 첨단기술을 결합한 <팬더 대장>이 등장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세계 각국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그림자인형극은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번 그림자인형극 행사 주간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연극평론가 린커환(林克歡)이 했던 언급은 한번쯤 되새겨 볼 만하다.
 
“현재 세계 각국은 전통의 융합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문화의 경계를 넘어 각종 콘텐츠를 종합해 전과 다른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다. 향후 중국의 인형극과 그림자극도 과거의 전통을 잘 살려 옛 것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사고를 반영해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글|장진원(張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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