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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차오(何滿潮), 현대 채광기술의 개척자


인민화보

2019-06-14      인민화보

“과학연구 종사자로서 우리는 광업과학기술의 최전선에 주목해야 한다. 채굴효율을 증대하는 동시에 그것이 사회와 환경〮개인 등에 초래하는 피해를 최소화 해야 한다.” 광산공정 암반역학 전문가인 허만차오 중국과학원 원사의 말이다. 사진/허만차오 본인 제공

허만차오, 예순을 훌쩍 넘긴 그는 중국과학원 원사이자 광산공정(鑛山工程) 암반역학 전문가다. 연구팀을 이끌고 석탄채광기술 혁신에 몸바쳤으며, 그가 제시한 이른바 ‘110공법’과 ‘N00공법’ 등은 업계로부터 석탄채광기술의 3차 혁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오늘날 스마트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광물채광기술 또한 새로운 산업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허만차오 원사는 “스마트기술을 도입하여 최종적으로 스마트화·무인화 채광을 실현하는 것”을 바람으로 꼽았다.

2011년, 허만차오는 벨기에 몽스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사진/허만차오 본인 제공

가난했던 농부의 아들 
허만차오는 1956년 허난(河南)성 서부 평범한 농민가정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런 그의 어린 시절 꿈은 한 가지, 바로 열심히 공부해서 가족들을 편히 살게 해주는 것이었다. 

“우리 마을은 허난성에서 가장 서쪽에 있었다. 3개 성이 경계를 맞대고 있었고, 산간에는 금광이 있었다.” 집 가까운 곳에 금광이 있어 채광현장을 보며 자랐고, 광산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1977년 가오카오(高考, 중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가 부활하면서 허만차오는 바람대로 창춘(長春)지질학원에 입학했다. 당시 그가 선택한 전공은 공정지질로, 재해 방지가 학과의 주요 내용 중 하나였다. 허만차오는 차츰 공정지질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금광과 관계된 것은 물론, 철광·탄광 등 관련 내용도 재미있었다. 부존자원, 지질조건, 지하자원에 따라 발생하는 재해 종류도 달랐다. 허만차오는 학부 과정이 끝나자마자 석사를 시작하며 공부에 매진했다.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때, 작은 사건이 발생하며 그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당시 푸순광무국(撫順礦務局)에서 시루(西露)천광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루천광은 중국에서 가장 큰 노천광산이었는데, 붕괴 사고가 수 백 번 일어나면서 많은 설비들이 망가졌다. 당시 시루천광 사고를 조사하면서 지질학적 지식은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역학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일이 있고 얼마 뒤, 석사 과정을 마친 허만차오는 연구방향을 바꿔 중국광업대학 역학과 박사 과정에 응시했다. 

웬만한 노력으로는 역학전문박사시험에 합격할 수 없었다. 허만차오는 1년 동안 지린(吉林)대학에서 수학과 역학 수업 수업을 청강했고, 마침내 모집인원 1명뿐인 중국광업대학 역학과 박사생으로서의 자격을 얻었다. 

10년 넘게 힘들게 공부하며 지질과 역학의 교차이론에 대한 우위는 확보했지만, 허만차오는 좀처럼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이론과 실천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므로 충실한 조사연구를 거쳐 창조적으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45세 전까지는 감히 한숨 조차 쉴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지기 싫어하는 어떤 면이 있었다. 자연과, 내 자신과, 힘겨루기를 했다. 일에 모든 것을 다 바쳤다.” 

2012년 5월, 허만차오가 지린성 잉청(營城)탄광 갱에서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허만차오 본인 제공

일류(一流)급 연구실에서 흘린 땀 
쉼 없는 노력 끝에 허만차오는 업계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중국광산공정 암반역학전문가가 되었으며 2013년에는 중국과학원 원사로 선발되었다. 
허만차오 팀의 연구공간은 심부(深部) 암반역학 및 지하공정 국가중점실험실(실험실)이다. 베이징시 하이뎬(海澱)구 칭화둥(淸華東)로 1동에 위치한 평범한 오피스텔로, 즐비한 고층빌딩과 왁자지껄한 캠퍼스 거리에 둘러 쌓여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 실험실에서 10여 개의 국가급 중대 과학연구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국가급 대상 수상은 물론, 중국·미국·유럽·일본 등에서 100개에 달하는 특허를 획득한 것 역시 이 실험실 소속 연구원들이다. 실험실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암반공정 역학연구 플랫폼으로 자리잡았으며, 매일 국내외 수 백 명의 학자들이 이곳을 찾아 각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심부 암반역학 및 지하공정 국가중점실험실은 허만차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곳이다. 허만차오가 설립한 ‘중국광업대학 베이징연구생부(대학원) 암토(岩土)공정연구소’가 이곳 실험실의 전신으로, 2008년 오늘날의 국가중점실험실로 승격되었다. 2013년에는 정부로부터 소재영역 및 공정영역 우수 국가중점실험실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이름만 본다면 실험실은 석탄 채광과 큰 연관성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장기적으로 채광해온 탓에 지구의 천부(淺部)자원은 날로 고갈되고 있고, 대다수 탄광은 이미 심부 채광 상태에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지질구조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나아가 내부 작용력의 변화를 유발하여 채광활동에 위협을 가할 것이다. 우리 실험실의 명칭은 바로 이 같은 배경에 근거한 것이다.” 허만차오의 말이다. 

암반역학과 광물채광을 한 곳에서 연구하게 된 것은 허만차오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석사·박사 공부를 하던 1980년대, 허만차오는 당시 중국 최대 노천광산 중 하나이던 푸순 노천광 프로젝트 연구에 참여했다. 당시 광산 붕괴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자 채광업체 측은 캐나다에서 지질학·암석역학 이중 전공 박사를 초청했었다. 그 박사는 연구팀을 이끌고 4번에 걸쳐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1년 여의 연구 끝에 해결방안을 마련, 채광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당시의 경험으로 탄광채광이 역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역학을 제대로 공부해서 다른 사람이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연구할 것이라고 굳게 결심했다.” 

심부 암석역학 및 지하공정 국가중점실험실 주임인 허만차오가 실험실 학생들의 실험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허만차오 본인 제공

획기적인 채광기술 
광물 안전채광분야에서 허만차오는 ‘전설’로 통한다. 노천탄광 산체(山體) 붕괴에서부터 지하탄광 붕괴사고까지, 난관을 한 단계 한 단계 극복하며 각종 난제를 하나 하나 해결해왔다. 

석탄은 재생 불가능한 자원이다. 장기 채광으로 인해 천부(淺部) 자원이 날로 고갈됨에 따라 현재 대다수 탄광은 심부 채굴 상태에 있다. 또한, 채굴작업 지점이 더욱 깊어지면서 암반의 온도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고, 채광 및 굴진작업 지점의 고온으로 인한 영향도 날로 악화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허만차오는 심갱(深坑)의 지열로 인한 해(害)를 자원으로 바꾸는 중요한 연구성과를 냈다. 그는 중국 상황을 고려해 갱내수를 냉원(冷源)으로 하여 심갱의 온도를 낮추는 방법을 최초로 제시했다. 또한, 추출한 에너지를 갱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산업단지의 석탄보일러를 대체해 건축물에 난방·온수·수도관 동파 방지에 활용하는 등 열로 인한 위험을 ‘자원화’했다. 허만차오가 고안한 이러한 시스템은 진정한 의미에서 환경보호와 에너지 절감,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한 것이었다. 이후 5개국에서 특허권을 취득했으며, 국가기술발명상을 수상했다. 기술 면에서 명실상부 세계 선두를 달리게 된 것이다. 

40여 년에 걸친 고된 연구와 학습은 허만차오로 하여금 지질과 역학의 교차이론에 관한 우위를 점하게 해주었다. 더불어 광산사고에 대한 남다른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허만차오는 관리감독부처 업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전문가의 관점에서 광산사고가 빈발하는 원인을 분석한다.“광산사고는 분명 미흡한 안전의식과 소홀한 안전관리 등의 인재(人災)이기도 하지만 근본적 원인은 현장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채광방법을 쓰고 있다는 데 있다.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할 뿐만 아니라 물이 새거나 가스폭발 같은 사고 모두 이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다.” 

광산사고를 줄이기 위해 허만차오는 과감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사고의 주요 원인인 탄광 갱도와 탄주(炭柱) 수(數)를 줄이거나, 심지어는 아예 없애자는 것이다. 즉, 광산압력을 이용해 갱을 만듦으로써 탄주를 없애고 갱도 수를 줄이자는 것이다. 2008년, 허만차오는 획기적 채굴기술인 이른바 ‘110공법’을 최초로 고안했고, 몇 년 뒤에는 ‘110공법’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N00공법’을 제시했다. 

중국은 지하 석탄자원 채굴에 있어 장기간에 걸쳐 장벽식 채탄법인 121공법을 채택해 왔다. 장벽식 채탄법은 구미지역에서 고안된 것으로, ‘121’이란 ‘1개’의 탄벽(炭壁)면 마다 ‘2’개의 갱도를 만들고, 이웃한 탄벽면 사이에 ‘1’개의 탄주를 놓는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와 달리 ‘N00’공법은 한 채탄구역의 ‘N’개 탄벽면에 ‘0’개의 갱도를 만들고 ‘0’개의 탄주를 남겨둔다는 의미다. 양자 모두 광산압력을 이용한 방식으로, 갱도와 탄주를 최소화했다.

2009년 6월, 쓰촨(四川)성 바이자오(白皎) 탄광에서 처음으로 ‘110’공법을 사용했다. 바이자오 탄광은 그 해 갱도를 6000여 m 적게 만들면서 2억여 위안에 달하는 경제수익을 창출했다. 2016년 9월에는 산시(陜西)성 닝탸오타(檸條塔) 탄광에서 최초로 ‘N00’공법을 채택했다. 채탄작업면 1개 당 1100만 위안을 절감함으로써 8000여 만 위안에 달하는 경제효과를 얻었다. 뿐만 아니라 두 개 탄광의 사고 또한 크게 줄어들었다. 

이 두 개의 채탄방법은 안전생산관리와 자원절약, 경비 절감 및 효율 증대 부분에서 분명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중국 국내외 매체로부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국내외 다수 전문가들은 현장연구를 거쳐 잇따라 호평을 했다. ‘110’ 공법과 ‘N00’공법은 석탄채굴사의 ‘제3차 기술혁명’으로 기록되었다. 

새 공법의 적극적인 홍보 
허만차오는 중국과학협회의 걸출한 과학기술인재상, 허량허리(何梁何利)기금의 과학 및 기술진보상 등 굵직한 상들을 받았다. 2017년 5월 27일 전국 과학기술근로자 축하 겸 혁신경쟁장려대회가 베이징에서 개막한 가운데, 당 및 국가 지도자들이 이 자리에 참석하여 제1회 전국 혁신경쟁상을 수여했다. 이 날 수상자 명단에는 허만차오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예가 거듭되면서 허만차오는 더욱 바빠졌다. 현재 한 가지 직업이 더 생긴 허만차오. 바로 전국 각지를 다니며 ‘110’공법과 ‘N00’ 공법을 홍보하는 것이다. 2019년 1월 29일, 산시(山西)성 자오메이(焦煤)그룹을 방문한 그는 이 회사 회장과 협의의 시간을 가졌다. 이 밖에도 최근 수 년간 유사한 대화를 빈번하게 갖고 있다. 새로운 채광방법를 알리는 일은 이미 업무의 일부분이 되었다.  

“‘110’ 공법과 ‘N00’ 공법이 채굴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안전계수를 향상시키는 공법이라는 것은 수 많은 데이터와 사례들로 증명되었다. 나는 더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최신 기술을 채택하여 탄광사고 발생을 줄이거나 근절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과학연구 성과의 최종 목적은 사회에 의해 쓰이는 것이라고, 실험실과 책 안에만 갇혀 있다면 과학연구는 그 가치를 잃는 것이라고 허만차오는 재차 강조했다.

허만차오는 2015년 여러 조직과 함께 중국광업과학협동혁신연맹(연맹)을 결성했고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연맹은 광업분야 최초의 연맹으로서, 선진기술보급 과정의 난제를 해결하고, 협동하고 혁신하여 호혜공영을 실현하는 것이 연맹의 목적이다. 혁신팀(대학 국가중점실험실과 첨단기술제조기업)과 추진팀(업계 중점기업 및 업계 대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의 허만차오에게는 새로운 연구 목표가 생겼다. 스마트기술을 도입해 스마트화·무인화 채광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연구 종사자로서 우리는 광업과학기술의 최전선에 주목해야 한다. 채굴효율을 증대하는 동시에 그것이 사회와 환경·개인 등에 초래하는 피해를 최소화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 평생의 분투목표다.” 
서른을 넘겨 박사가 되고 30여 년 간 근무한 뒤 원사가 된 허만차오. 그런 그가 생각하는 미래는 무엇일까? “만약 하늘이 내게 30년을 더 준다면 나는 ‘110’공법과 ‘N00’ 공법을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알리고 싶다. 이것은 석탄이라는 에너지산업의 미래 방향이고 나는 기꺼이 이를 위해 일하고 싶다.” 


글|충야투(種亞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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