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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鎮江), 추억과 이상(理想)을 간직한 도시


인민화보

2019-05-14      인민화보

2018년 4월 2일 하늘에서 찍은 장쑤성 전장 시진나룻터 풍경. 고대 주택과 현대 건축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며 문명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IC

전장은 고즈넉한 멋을 간직한 강남의 작은 도시다. 수려한 청산과 일년 사계절 봄 날씨를 만끽할 수 있는 휴식의 장소이자 풍부한 문화적 함의를 가지고 있고 인문이 꽃을 피운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기도 하다. 

1935년 11월부터 1936년 2월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들이 머무르기도 했던 곳으로, 대중에 개방된 전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료 진열관(사료관)은 전장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사료관에 진열된 사료와 사진들은 80여 년 전 외세의 침략에 함께 맞섰던 중한 양국 인민의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여줌과 동시에 오늘날 양국 국민 간 우호적 교류의 다리와 토대가 되었다. 

전장 금산사. 휘황찬란한 사원이 ‘절이 산을 감싸는’ 독특한 스타일을 형성했다. 사진/ VCG

역사와 전설이 흐르는 고장 
장쑤(江蘇)성 남부, 창장(長江) 하류에 위치한 전장은 산과 물에 인접해 있어 예로부터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많은 명승고적과 눈부시게 화려한 풍광을 자랑하며, ‘대강(大江)’의 품격을 보여주는 삼산(三山)국가급 풍경명승구가 특히 유명하다. ‘삼산’은 금산(金山), 초산(焦山), 북구산(北固山)을 가리킨다. 창장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 산들은 물빛과 산색이 서로를 비추며 절경을 뽐낸다. 오랜 세월의 풍파 속에 많은 인문 경관과 역사문화 유산을 얻게 된 전장이다.

전장 북고산 감로사. 사원 앞에서 <유비초친감로사(劉備招親甘露寺)>라는 대형 시대극이 상연되고 있다. 사진/ VCG

중국 민간 전설 <백사전(白蛇傳)>을 아는 이라면 ‘수만금산(水漫金山)’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백사전>에 등장하는 금산이 바로 이곳 전장 금산이다. 금산은 그 옛날 창장을 수 놓던 섬으로, ‘강의 심장에 핀 연꽃(江心一朵芙蓉)’이라 불렸었다. 이후 창장의 물길이 바뀜에 따라 금산은 육지와 통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전장의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산에는 많은 고적(古迹)들이 남아 있어 고개만 돌리면 어디서나 역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강천선사(江天禪寺)·자수탑(慈壽塔)·능가대(楞枷臺)·묘고대(妙高臺)·관음각(觀音閣)·법해동(法海洞)·선인동(仙人洞)·백룡동(白龍洞) 등이 대표적으로, 이들 모두 산세를 따라 암벽에 지어졌다. 전당(殿堂)과 대청은 서로 이어져 있고 정자와 누각은 아래 위로 통하는 구조로써, 이를 통해 금산 전체를 품음과 동시에 산과 절의 혼연일체를 실현했다. 멀리서 금산을 바라보노라면 절만 보일 뿐 산은 보이지 않는다. ‘금산사가 산을 둘러싸고 있다’는 표현은 바로 이 때문에 생긴 말이다. 

베이징 이화원(颐和園)의 불향각(佛香閣), 허베이(河北) 청더(承德)피서산장의 금산정(金山亭)에 가면 이들 건축물 모두 전장 금산사의 건축 특징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산 위에 자리잡은 법해동인데, 이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금산사의 개조(開祖) 법해(法海)가 고행을 했던 곳이다. 법해는 덕망이 두터웠던 고승으로 알려져 있다. 해마다 12월 31일이 되면 금산사 불교광장에서 타종 및 축원행사가 성대하게 열린다. 또한, 6월에 전장을 찾으면 금산사의 연꽃전도 만나볼 수 있다. 

금산이 <백사전>의 사랑 이야기로 유명세를 떨치게 됐다고 한다면, 북구산을 알린 것은 <삼국연의>라 할 수 있다. 이곳의 명승고적 대부분 삼국의 이야기와 관련 있어 삼국시대의 유적을 찾는 이들에게 전장 북구산은 필수코스가 아닐 수 없다. 북구산 앞 봉우리의 열사능원과 ‘경세비(警世碑)’는 본래 삼국 동오(東吳)의 황제 손권의 황궁과 동오 대도독(大都督) 주유의 수부(帥府)에 있던 것이다. 산의 남쪽 기슭에는 동오 대도독 노숙과 동오의 명장 태사자의 묘가 있으며, 창장과 등지고 있는 산의 북쪽으로는 절경이 펼쳐져 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감로사(甘露寺)가 뒷 봉우리의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데, 유비가 강동을 지나 손권과 연맹을 맺은 곳이라 전해진다. 이와 함께 감로사 뒤편의 다경루(多景樓)는 황학루(黃鶴樓)·악양루(岳陽樓)와 함께 고대 창장의 3대 명루로 이름나 있다. 북구산은 자고로 문인과 학자들이 운집했던 곳이었다. 다경루 높은 곳에 걸려 있는 ‘천하강산제일루(天下江山第一樓)’ 편액은 송나라 4대 서예가 중 한 사람인 미불(米芾)이 남긴 것이며, 이백과 소식 같은 문호들도 이곳 북고루에 올라 풍광을 바라보며 시를 남겼다. 이와 함께 남송의 애국사인(詞人) 신기질(辛棄疾)이 쓴 명 구절, ‘어느 곳에서 중국 천하를 바라볼 수 있는가? 풍광이 눈에 가득 들어오는 북고정이로다. 천고에 얼마나 많은 흥망사가 있었는가? 유유히, 창장은 끝없이 흐르고 있나니(何處望神州, 滿眼風光北固樓.  千古興亡多少事, 悠悠. 不盡長江滾滾流)’는 수 대에게 걸쳐 전해지고 있다. 

전장에서 ‘천고의 흥망사’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역시 시진두(西津渡) 옛 거리로, 전장 서쪽에 위치한 운대산(雲臺山) 북쪽 기슭의 잔도를 따라 발전한 역사 유적지다. 시진두 옛 거리의 총 길이는 약 500m로, 중국 6조 시대(AD 222-589년)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당·송·원·명·청 5개 왕조에 걸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때문에 거리 곳곳에서 6조 시대부터 청 대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옛 거리는 오래된 청석판(青石板)이 깔려 있고, 거리 양쪽으로는 푸른색 벽돌로 지어진 민가와 담장 등이 있어 변화 무쌍했던 과거를 느끼게 한다. 또한 이곳에는 소관석탑(昭關石塔)·관음각·소산루(小山樓)·대도정(待渡亭)·권문(券門)·작은 나루터 거리(小碼頭街)·옥산대나루(玉山大碼頭) 등 유적지가 있어 100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대도정을 지나면 거리 양편에 즐비한 형형색색의 점포가 눈에 들어온다. 찻집부터 공예품 가게·제과점까지 없는 것이 없고, 이 밖에도 각종 간판들이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끈다. 제법 운치가 느껴지는 곳이다. 먹을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옛 거리야말로 최고의 장소다. 이곳에는 각양각색의 전통 먹거리가 있다. 특히 ‘전장싼과이(鎮江三怪)’를 찾는 이들이 많다. ‘싼과이’란 ‘샹추바이부화이(香醋擺不壞, 전장의 식초는 놔둬도 썩지 않는다)·야오러우부당차이(肴肉不當菜, 고기는 요리가 아니다)·몐궈리몐주궈가이(面鍋裏面煮鍋蓋, 냄비 안에 또 다른 냄비를 넣고 뚜껑을 덮어 국수를 삶아 먹는 요리)를 가리킨다. 전장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단연 그릇을 들고 시원한 육수의 ‘궈가이몐’을 먹는 것이다. 그릇 위에 향초(젠장의 식초) 몇 방울을 떨어뜨린 뒤 부드러운 고기를 곁들이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다. 

전장 북고산 감로사. 사원 앞에서 <유비초친감로사(劉備招親甘露寺)>라는 대형 시대극이 상연되고 있다. 사진/ VCG

무위안초등학교 유적지
 
중한 양국의 혁명성지(聖地)
전장의 역사는 이곳 사람들에게 대대손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이곳의 후손들이 불굴의 정신을 갖게 된 배경이 되었다.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하고 민족해방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의 역경을 견디고, 기적과도 같은 감동의 스토리를 쓴 이들, 바로 이곳 전장의 자손들이다. 일례로, 중영 간의 아편 전쟁 당시에는 이곳 인민들 모두 수성주군(守城駐軍)과 함께 영국 침략군에 맞서 싸웠다. 전장 출신의 자오성(趙聲)은 광저우(廣州) 황화강(黃花崗)의거를 이끌며 신해혁명의 선구자가 되었다.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지즈(嵇直)가 전장에서 공산주의사상을 전파했으며, 항일전쟁 시기에는 신4군이 마오산(茅山) 일대를 중심으로 한 쑤난(蘇南)항일근거지를 건설했다. 전장은 그야말로 중국 근대 혁명사의 산증인인 것이다. 

하지만 전장에 한국 애국지사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일찍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초기, 상하이가 주 활동무대였지만 많은 임시정부 요원들은 전장 지역에서 잇따라 항일운동을 펼쳤다. 일례로 1925년 겨울, 임시정부 요원 안동만과 박병강이 전장을 찾았다. 이에 전장 항일구원회의 책임자이자 무위안(穆源)소학 이사장이었던 양공야(楊公崖)는 안동만·박병강이 샤오양자먼(小楊家門) 23호의 무위안 소학교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더불어 항일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후 박병강은 길을 떠나기 직전 손중산에게 ‘혁명은 아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동지여, 계속 힘을 내주시오’라는 글을 남김으로써 용기를 북돋았다. 당시 박병강이 남긴 대련(對聯)은 오늘날까지도 전장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료전시관 외경

1933년 훙커우공원(현 뤼순공원)에서 폭탄사건이 있은 뒤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 곳곳을 전전해야 했다. 이후 1935년 10월 말 에 임시정부는 저장 자싱(嘉興)에서 회의를 연 뒤 전장으로 거점을 옮기기로 결정했고, 얼마 뒤인 11월, 중국국민당 중앙조직부와 장쑤성정부 천궈푸(陳果夫) 주석의 치밀한 준비 속에 이동녕·김구·이시영·조성환·조완구·차이석 등 임시정부 요원은 잇따라 항저우에서 전장으로 옮겨왔다. 그렇게 1936년 2월 전장에서 난징(南京)으로 다시 한번 거점을 옮길 때까지 임시정부는 1935년 11월부터 약 4개월간 전장에서 활약한다.

전장시 수륙사샹(水陸寺巷)의 장쑤여관에는 아직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 김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은 본래 중국 국민당 장쑤성정부가 공무를 접수하던 장소로, 1936년 이곳에 머물던 김구는 전장 항일구국연출팀의 초청을 받아 무위안 소학교에서 ‘조선 망국의 한’을 주제로 연설을 했다. 당시 김구의 연설을 듣기 위해 각계의 진보인사 400여 명이 운집해 강연장 전 좌석을 채웠다. 나폴레옹 모자에 홑저고리를 입고 등장한 김구는 뛰어난 언변으로 뜨거운 갈채를 이끌어냈다고 알려져 있다. 

1992년 중한 양국이 수교를 맺은 이후 전장은 다시 중한 양국 국민 간 우호 교류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전장 시는 1998년 한국 전라북도 익산시와 우호도시관계를 체결했고, 2010년에는 한국 부산의 강서구와도 우호관계를 맺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전장에서의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동시에 후대에게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전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료진열관을 건립하고 2013년 공식 개관했다. 진열관 건립에 대해 한국 독립기념관과 기타 관련 기념관은 적극적인 지지의 뜻을 보내왔다. 특히 진열관 완공 이후 한국 독립기념관이 많은 서적과 서신을 비롯해 기념관에서 소장 중이던 복제품 등을 제공함으로써 진열관은 더욱 풍부한 볼거리를 갖게 됐다. 진열관은 사료를 소개하고 복제한 사진 및 유물을 전시함으로써 중한 양국 국민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알게 되면 누구나 감동을 느낄 만한 영광의 세월과 양국 국민이 나누었던 두터운 우정을 재현했다. 

역사가 전장이라는 강남의 도시와 한국의 지사들을 더욱 긴밀하게 연결시킨 가운데, 신 시기의 오늘날 전장은 양국 우호 교류의 역사에 또 한 번의 정점을 찍었다. 현재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료진열관은 전장을 찾은 한국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진열관을 둘러본 뒤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름을 남기고 기념촬영을 함으로써 외세의 침략에 함께 맞서 싸우고 민족 독립을 이루어낸 중한 양국 국민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을 끌어안은 도시 
전장은 예스러운 멋을 간직하고 있지만 과거에 얽매여 있지는 않다. ‘녹색발전’이념을 실천하는 데 있어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곳, 바로 전장이다. 

전장은 지난 2012년 발표된 중국 제2차 저탄소 시범 도시 중 하나에 포함되었다. 2015년 파리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이후 기후보호에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2016년에는 ‘펑치 저탄소 소도시(鳳棲低碳小鎮)’를 포함한 제1차 8개 시급(市級) 특색 소도시 건설을 제안했다.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서 전장은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6년 국제 저탄소 기술 및 상품 거래전시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 외에 전장은 이를 기반으로 스마트 제조·태양에너지 전지·고효율 태양광 패널 등 저탄소 산업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같은 전장의 ‘실천’은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를 위한 ‘중국 솔루션’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 

기술혁신과 생태안보의 유기적 융합이라는 새로운 발전의 길에서 전장은 빠르게 성장 중인 중국의 도시가 짊어진 책임을 보여주었다. ‘천하제일강산’이라는 명성답게 전장은 새로운 시대에 더욱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다. 


글| 장진원(張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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