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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윈(春運), 안식을 찾아 떠나는 순례길


인민화보

2019-04-17      인민화보

필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고향을 서울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정확한 답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있어서 서울이란 거대 도시와 고향의 이미지는 마치 같은 극의 자석처럼 여간해서 겹쳐지기 힘들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서울에서 자라고 큰 아이들이라 해도 여전히 아버지의 고향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1980년대 초 1월 1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한국은 음력설이 아니라 양력설을 지냈기 때문에 1월 1일이 되기 전에 설날처럼 고향으로 돌아가곤 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남도 목포로 향하던 첫 귀향길(비록 아버지의 고향이었지만)이 어린 나에게 준 충격은 대단했다. 

목포는 한국 서남부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다. 아버지의 고향은 정확히 말하자면 목포에서 배를 타고 훨씬 남쪽으로 가야 나오는 도초라는 이름의 작은 섬이었다.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어렸던 나에게 첫 귀향길이 그토록 인상 깊었던 이유는 고향까지 가는 길이 어린 내가 견디기에 너무나도 멀었기 때문이요, 육체적인 고단함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울과 전라남도를 잇는 고속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주로 철도를 이용하곤 했다. 지금은 철도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통일호’라는 열차를 타고 7시간 가까이 남으로 달려가야 목포에 닿는다. 거대한 대륙 속에서 단련된 중국인들에게 7시간의 열차 탑승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통일호는 침대차 조차 없었기 때문에 딱딱한 의자에 7시간 가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견디기란 어린 아이에게 가혹한 형벌이나 다름 없었다. 어린 아이였던 나는 열차가 밤늦게 목포역에 도착했을 때 진이 빠져 어머니 등에 엎혀 잠이 든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고향 가는 길은 목포에서부터 다시 시작됐다. 배를 잡아타고 반나절 정도 정처 없이 섬까지 가야하기 때문이다. 처음 타본 배도 신기했지만 그것도 잠시, 두 세 시간이 지나고 나자 배에 익숙하지 못했던 나는 배멀미에 시달리다 기진맥진했다. 당시에는 배의 속도도 느렸기 때문에 배를 타고 7시간 정도는 가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난의 행군 끝에 도착한 섬은 정말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후진 촌동네였다. 여기를 오기 위해 그렇게 고생을 해야 했다니...어린 나였지만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아버지의 표정은 그 고생을 하며 왔음에도 밝기 그지 없었다. 지금이야 할머니 할아버지를 서울로 모셔와 1980년대와 같은 고생길이 끊기지 오래지만 1980년대 내내 우리 가족은 명절 때마다 육지와 바다를 넘나들며 전쟁과도 같은 귀향길을 견뎌내곤 했다. 

올해도 중국에 어김없이 춘제(春節)가 찾아왔고 고향을 가려는 중국인들을 수송하기 위한 춘윈이 2월 내내 펼쳐졌다. 올해 춘윈 기간 수송한 귀성객의 수가 거의 30억명이라고 하니 지구 인구의 반 정도가 불과 2주 정도의 기간 동안 일제히 이동하는 장대한 드라마인 셈이다. 필자가 대학생 때 어학연수를 위해 베이징을 처음 찾았던 1999년 목격한 중국인들의 귀성길 역시 나의 어렸을 때 경험 못지않게 고생길이었다. 당시는 고속철도가 없었기 때문에 보통 10시간 이상 기차를 타야만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침대칸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농민공들이나 노동자들은 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고향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곤 했다. 우루무치(乌鲁木齐) 같은 경우 2박3일은 기차를 타고 가야했던 시절이었다. 

그 수많은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은 무엇 때문에 그 고생을 하면서도 해마다 고향을 찾았을까? 분명한 것은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힘들게 고향을 찾았던 아버지의 얼굴에서도, 2박3일간 열차에 시달리다 고향에 도착한 중국 농민공들의 얼굴에서도 피곤함 속에 설레임이 가득했던 것을 기억한다. 한국인과 중국인에게 고향이란 언젠가 고달픈 타향생활 끝에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본향이자 이상향 같은 존재였다. 그런 고향으로 돌아가는 춘윈은 일종의 종교적 순례와도 성격이 비슷하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2019년 춘윈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부모형제가 있는 안식처에서 다시 각박한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다. 다시 힘든 시간이 시작되지만 또 내년 춘제를 기대하며 이들의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글|김중호(CBS노컷뉴스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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