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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다채로운 전원마을 ‘푸청진’


인민화보

2018-12-10      인민화보

 하늘에서 내려다본 푸청진 사진/천젠(陳建)

푸청(鳧城)진은 산둥(山東)성 짜오좡(棗莊)시 산팅(山亭)구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로서, ‘짜오좡시의 뒤뜰, 교외의 휴양지’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2004년 4월 장좡(張莊), 푸좡(付莊), 둥푸산(東鳧山) 등 3개 향(鄕)이 통합되어 탄생했다. 면적은 113.7km2, 인구는 3만6000명이다. 2012년 9월 마을개조 도시화 사업을 마쳤다.

산팅구에서 ‘가장 젊은’ 도시인 푸청진은 본래 경제적 기반이 약하고 황무지와 민둥산이 많은, 작고 폐쇄적인 도시였다. 그러나 지난 몇 년 간 인문학과 우수한 생태자원 및 산업기반을 바탕으로 지역 특색을 적극 개발한 결과 향토적 분위기가 물씬 흐르는 아름다운 전원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현재 푸청진은 ‘하나의 도시에 담긴 다채로운 풍경’과 ‘각종 테마별 마을’ 전략을 통해 아름다운 도시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창랑진 왕자완 마을의 혁명문화 유적은 수많은 여행객의 혁명역사 교육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푸청진정부 제공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시골마을
푸청진은 생태환경이 뛰어나고 문화적 배경이 깊다. 여기에는 공자와 관련된 <창랑가(滄浪歌)>의 창랑연(滄浪淵)이 있고, 중국의 개국공신인 뤄룽환(羅榮桓)이 만든 루난(魯南)지역 최초의 현(縣)급 혁명정권 왕자완(王家灣) 이(嶧)현 항일민주정부 유적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절경인 주자이거우(九寨溝)의 풍경을 닮았다는 룽먼관(龍門觀), 산둥성을 이르는 제노(齊魯)의 민속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훙산위(紅山峪), 오랜 시간 세월의 무게를 쌓아온 전한 시기 양효왕(梁孝王)의 무덤인 양왕동(梁王洞) 등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푸청진 칭룽산(靑龍山) 풀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파릇파릇 솟아나는 녹색 식물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저 멀리 보이는 산과 그 산 너머 떠가는 구름, 시원하게 펼쳐진 논밭과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푸근하고 정겨운 풍경을 자아낸다. 일반 민가로 들어서면 바위 틈으로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맑고 쾌적한 자연환경이 펼쳐진다.

왕자완마을은 푸청진 동쪽에 위치해 있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슝얼산(熊耳山) 국가지질공원과 인접해 있으며 삼림녹화율은 63%가 넘는다. 이현 항일민주정부 유적을 복원할 당시 왕자완마을만의 아름다운 시골풍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올해 86세인 마을 어르신 천지잉(陳繼英)은 “과거 마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고 운을 뗐다. 예전에는 울퉁불퉁한 흙길에 땔감과 흙더미가 길가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어 자전거 한 대도 제대로 지나가지 못했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제 아름답게 변화한 왕자완마을길은 깔끔한 포장도로가 깔려 있다. 쓰레기나 잡초들도 사라졌다. 이곳을 방문하는 외지인들은 마을 어귀에서부터 루난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혁명 등대’와 함께 관광지원센터, 깨끗하고 아기자기한 돌바닥 골목길, 졸졸 흐르는 창룽취안(滄龍泉), 생동감 넘치는 벽면 판화 등을 볼 수 있다. 깊은 문화적 숨결과 짙은 향토색을 보다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옛 이현 북부의 산간지대에는 ‘루난 일색(一色, 제일의 풍경)’이라 불리는 창랑연이 있다. 창랑연의 경치에 관해서는 고대 지리서에도 많은 기록이 남아 있고 문인과 선비들도 작품을 통해 이곳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곤 했다. 민간에서는 200g짜리 붉은 비단실에 돌을 묶어 못에 던졌는데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로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없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역사 고증에 따르면 공자가 창랑연(창랑수)에 얽힌 <창랑가>를 들은 것은 그가 각국을 주유(周遊)하다 돌아온 지 3년째 되는 해(BC 482년)라고 한다. 이때 공자의 나이 69세로 세속의 온갖 천태만상을 다 보고 난 뒤였다. 공자는 제자들을 데리고 오랜 명성으로 잘 알려진 창랑연을 찾아 바닥이 보일 만큼 맑게 일렁이는 물결을 보며 마음이 고요하고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제자들이 못가로 나와 창랑연을 감상하는 모습을 본 한 선비가 다가가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읊조렸다. 공자는 이 노래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번 잘 들어보거라.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하는데, 이는 창랑의 물이 스스로 그러하게 만드는 것이니라.” 그 말인 즉 자신은 이제 나이가 들어 사랑하는 제자들을 일일이 보살펴 줄 수 없으니, 제자들 스스로 주위를 잘 살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올바른 판단을 내리라고 당부하는 뜻이 숨겨져 있다. 당시 공자의 마음이 꼭 그러했으리라.

공자가 세상을 떠난 지도 2400년이 넘었지만 창랑연에서 나지막이 울려 퍼진 노래 덕인지 창랑연은 그 뒤로도 명성을 이어가며 수많은 문인과 선비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위대한 인물의 발자취를 찾으며 창랑연의 깨끗한 물이 자신의 마음 속에도 힘차게 흐르기를 소망했다.

푸청진 딩판산커우(定盤山口) 마을의 한적한 모습  사진/왕윈충(王蘊聰)

푸청진 민가는 자연생태를 잘 보존하도록 설계되어 여행객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왕윈충

민가 내에는 여행객들을 위한 서화실이 마련되어 있다. 사진/왕윈충

민가 홈스테이와 농촌체험
첸포야(千佛崖)마을은 현지 사람들에게 ‘첸포옌(千佛檐, ‘옌’은 ‘처마’라는 뜻)’으로 불린다. 마을의 암석이 대부분 석회석이나 붉은 셰일이 어서 구멍이 많고, 늘어선 구멍들이 마치 작은 불당을 뜻하는 불감(佛龕)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붙었다. 푸청진 남동부에 위치한 첸포야마을은 전형적인 루난 구릉산간 형태의 촌락이다. 남북 양쪽으로 산이 버티고 있고, 마을은 5km넘게 이어진 좁고 긴 산골짜기에 끼어 있다.

첸포옌 동쪽에 위치한 먀오난위(廟南峪) 홈스테이 마을은 51가구에 228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초목으로 이뤄진 칭룽산 둘레길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고, 세 개의 하류가 모여 생긴 스쯔허(十字河)가 온 마을을 가로질러 흐른다. 삼림녹화율은 90%에 이른다. 마을은 그 특징을 따서 ‘천 개의 불상, 백 개의 샘물, 두 개의 요새, 하나의 동굴’로 알려져 있다. 수려한 자연환경과 잘 보존된 원시 촌락, 짙은 문화적 기운이 흐르는 가운데 편리한 교통까지 갖추고 있다.

먀오난위 홈스테이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부윈차오(步雲橋)’가 눈에 들어온다. ‘하루 아침에 높은 곳에 오르다’라는 멋진 뜻을 담고 있는 교량이다. 관광용으로 건설됐지만 그간 불편했던 양쪽 내륙 사이의 교통 문제를 말끔히 개선하는 역할도 했다. 

푸청진의 한 어르신이 아이들에게 ‘호랑머리신발’과 ‘호랑머리모자’에 얽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진/ 푸청진정부 제공

교량 북서쪽으로 50m 지점에는 ‘천불’이라는 이름을 지닌, 수나라 때 설립된 링취안바오쓰(靈泉保壽) 선원(禪院)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당나라 고종 시기 장군인 설인귀(薛仁貴)가 동쪽을 정벌하던 중 이 절에 들렀는데, 군량미가 부족하여 할 수 없이 동으로 주조된 천불의 처마를 녹여 돈으로 바꾼 뒤 토기로 비슷한 벽돌을 만들어 빈 자리를 대신했다고 한다.
 
선원의 아래쪽에는 일년 내내 멈추지 않고 물이 흐르는 샘구멍이 하나 있다. 검사 결과 샘물은 PH 7.63 가량의 약산성으로 텅스텐, 스트론튬, 마그네슘, 철, 안티몬 등 인체에 필수적인 여러 가지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가채매장량은 약 1억m3에 달한다. 현지인들은 샘물이 병을 고쳐준다고 여겨 집안에 두통, 몸살, 설사를 앓고 있는 아이가 있으면 이 샘물을 길어다 약을 짓는다. 샘물로 약을 지으면 효험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를 ‘약(藥)신령이 사는 샘물’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창랑연의 고즈넉한 풍경 모습 사진/푸청진정부 제공

먀오난위마을에는 다채로운 민속문화와 비물질문화유산(무형문화재)이 많다. 오랜 세월 대대손손 이어져 온 호랑머리신발의 수공예 기법은 현지 마을주민이 전통문화를 얼마나 아끼고 존중하는지를 보여준다. 또 이곳에서는 맹자가 말한 ‘내 집 어른을 모시는 마음으로 남의 집 어른을 모시고,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의 집 아이를 대하는(老吾老以及人之老,幼吾幼以及人之幼)’ 소박하고 인정 많은 풍속이 얼마나 잘 전해 내려오는지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먀오난위마을은 ‘전 지역 발전, 전 광역 여행’ 정책 추진을 계기로 100만 위안(약 1억6300만원)을 투자했다. 이 중 80만 위안을 5곳의 신규 홈스테이 민가 증설에 사용했다. 또한 농촌 체험학습이나 수확농장, 낚시카페 등 마을에 다양한 휴양시설도 도입했다. 나머지 20만 위안은 전자상거래에 투자하여 온·오프라인 쇼핑플랫폼을 통해 호랑머리신발, 호랑머리모자 등 수공예 제품이나 호두, 산초나무 열매, 좁쌀 등 농산물이 외지로 팔려나갈 수 있도록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 먀오난위 홈스테이 마을을 중심으로 창랑연, 황자완, 룽먼관, 훙산위 등 주변 도시까지 효과를 확산시켜 5개 지역을 한번에 돌아보는 관광벨트를 기획했다. 나아가 짜오좡시 북부 칭룽산의 초목 둘레길을 지렛대로 전 도시 관광지의 수준 향상을 꾀하고 있다.


글| 저우천량(周晨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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