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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틀 위의 무용수-자수예술가 야오젠핑(姚建萍)


인민화보

2018-09-07      인민화보

야오젠핑. 쑤슈예술가, 국가급 무형문화재(쑤슈) 대표적 계승자, 전국 중청년 덕예쌍형 문예종사자. 선배들의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융침수(融針繡)’ 스타일을 확립했다. 실과 바늘로 시대를 표현해 현대 쑤슈를 대표하는 최고 수준의 작품을 창작했다.

야오젠핑은 아름답다.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상하는, 강남지역의 수놓는 여인을 보는 것 같다. 1967년 생인 그녀는 여전히 몸놀림이 민첩하고 발걸음이 가벼우며 목소리가 부드럽다. 기자를 맞이하기 위해 특별히 연분홍색 실크 롱스커트를 입은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치맛자락이 흔들리면서 하얀색 신발이 살짝 드러나곤 했다.

야오젠핑의 손은 더 아름답다. 우리에게 수놓는 법을 보여줄 때는 은바늘이 반짝거리기만 할 뿐 실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자수가 이렇게 아름답다니, 마치 손가락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야오젠핑은 ‘수틀 위의 무용수’처럼 구름이 가는 듯, 물이 흐르는 듯 자신감 넘치고 고요한 자태로 수를 놓았다.

야오젠핑이 수놓는 법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왕레이

“집집마다 규방에는 수틀이 있고, 여자들은 자수를 배운다.” 여자의 일이라고 불렸던 바느질, 자수, 방직 등에 능한 구쑤(姑蘇, 쑤저우(蘇州)의 별칭) 여성들은 자수법을 대대로 전승했다. 자수는 여성 집안의 교양을 나타냈다. 쑤저우 자수인 ‘쑤슈(蘇繡)’가 유명해진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야오젠핑의 전통 쑤슈 작품 <낙화(樂和)>

쑤슈는 중국 4대 자수 중 하나로 장쑤(江蘇)성 쑤저우의 전후(鎮湖)가 발원지다. 야오젠핑자수예술관도 쑤저우시 가오신(高新)구 전후거리에 있다. 흰 벽에 검은 기와가 얹어진 3층 규모의 작은 건물로 1, 2층은 작품 전시실로, 3층은 작업실로 각각 사용되고 있다. 현재 40여 명의 자수가와 야오젠핑이 함께 일하고 있다. 전시실에는 야오젠핑의 30년 피와 땀이 전시돼 있다. 그녀가 수집한 자수품에서 각 시대별 쑤슈 작품까지, 그리고 그녀 자신의 대표작까지 두루 전시돼 있다. 야오젠핑은 국가급 무형문화재(쑤슈) 대표적인 계승자여서 예술관을 방문하는 사람이 많다. 야오젠핑은 자주 전시실로 내려가 직접 작품을 설명한다.

야오젠핑의 작품 <중국몽·화지몽·화운(中國夢·花之夢·花韻) 시리즈>

스승을 모시다
전후 신성(新盛)촌에서 태어난 야오젠핑은 7-8살 때부터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자수를 배웠다. 10살이 넘자 출중한 자수품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80년대 초, 자수 좀 한다는 여성들이 집에서 만든 자수품을 쑤저우 시내에서 팔기 시작했다. 아예 다른 지역으로 나가 자수품을 팔기도 해 여성은 자수를 놓고 남성은 외지로 나가 자수품을 판매하는 ‘부부상점’이 형성됐다. 외지 고객이 직접 주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1990년, 사람들이 ‘부부상점’ 사업에 열을 올릴 때 결혼해 아이도 있었던 야오젠핑은 스승님 문하로 들어가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은 물론 가족도 그녀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결정을 생각하면서 야오젠핑은 “그때 나는 재주가 좋아서 다른 사람보다 3배는 돈을 더 벌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놓은 수준으로 올라가고 싶었고 스승님께 진짜 자수를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야오젠핑의 작품 <해납백천(海納百川)>

당시 쑤저우는 50년 대에 벌써 자수연구소를 설립하고 쑤슈 대가들을 모았다. 기술 보안이 철저해 대가들은 사적으로 제자를 받지 못했다. 야오젠핑은 친구의 소개로 퇴직한 자수의 대가 쉬즈후이(徐志慧) 선생을 알게 됐다. 그녀는 즉시 쉬 선생을 찾아가 성심성의껏 부탁을 드렸다. 쉬 선생은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4년 동안 공부한 끝에 야오젠핑은 스승에게 쑤슈의 정수를 물려받았다. 그녀는 평침(平針)과 난침(亂針) 등 다양한 표현법을 체계적으로 배웠고, 전통적인 미인도 및 꽃, 풀, 물고기, 벌레 등 소재의 표현 방식을 익혔다.

야오젠핑의 작품 <하로교욕어(荷露嬌欲語)>

대형 쑤슈 작품 <실크로드> 중 <실크로드-만재이귀(絲綢之路-滿載而歸)>. 이 작품은 중국미술관에 영구 소장됐다.

야오젠핑의 작품 <사녀축국도(仕女蹴鞠圖)>

과감한 결심 
1998년은 자수에 중요한 한 해였다. 시장에서 자수의 인기가 높아지자 정부는 자수품 거리를 조성해 자수 상품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기로 결정했다. 전후는 금세 명성이 자자한 자수 시장으로 성장했다. 자수품 매출은 해마다 늘어 2002년 매출액이 3억여 위안에 달했다. 그러나 야오젠핑은 오히려 옛거리의 자신의 집에 ‘전후자수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때는 정말 ‘부부상점’이 크게 유행했다. 나도 상점을 개설하는게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내 재주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선배들처럼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앞선 10년은 칼을 가는 시기였고 야오젠핑은 이제 실력을 발휘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제2의 단계로 들어가 시대성을 반영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야오젠핑은 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어렵고, 스타일을 형성하는 것은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전통공예 밖에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고 싶었다. 그래서 연구해야 할 것이 많았고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은 더 많았다. 비난과 몰이해를 피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녀는 당시 시장에 있는 비슷비슷한 자수품이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그림이나 사진을 단순히 모방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창작을 하고 싶었다.”

야오젠핑은 자신은 쑤슈의 상아탑에 있는 심오한 아름다움을 배웠다며, 산업화의 물결이 거셌지만 수준 높은 창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선배들에 대한 최선의 보답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침견혈’의 예술
자수는 ‘일침견혈(一針見血)’의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 예술이다. 야오젠핑은 “기술적으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바늘을 ‘안정적이고 정확하며 단호하게’ 찔러야지, 기계적으로 해선 안 된다. 예술적으로는 자신의 언어를 표현해야 한다. 그냥 답습하는 게 아니라 정신을 표현해야 한다. 능력을 갖춰야 자신이 이해한 것을 색채와 스티치로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이 고급 자수 예술”이라고 말했다. 자수를 배우는 것은 어렵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어렵다. 야오젠핑이 제일 난감한 것은 자수를 배우려는 젊은이가 적다는 것이다.

자수 하면 자연스럽게 자수 바늘이 떠오른다. 자수 바늘을 직접 본 기자는 정말 깜짝 놀랐다. 자수 바늘이 너무 가늘고 작아 수놓는 사람의 손끝에서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자수를 놓는 과정은 시간과 노력, 정성이 많이 필요해 인터넷시대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것 같았다.

취미로 자수를 한다면 괜찮지만, 일로 삼는다면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다. 제작 기간도 길고 노력도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야오젠핑은 3년이 쑤슈를 배우는 고비라고 말했다. 3년 이상 버텨 곧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보일 때 그만두는 학생도 많다고 했다. 게다가 예전에는 스승을 모시고 기술을 배웠지만, 지금은 월급을 주면서 가르쳐준다고 해도 하려는 사람이 적은 상황이다. 계승이 야오젠핑의 가장 큰 고민이다.

그래서 야오젠핑은 칭화(淸華)대학교 예술학원에 다니던 딸을 불렀다. 딸처럼 시대적 감각이 있고 지식도 많은 신세대라면 쑤슈를 지속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쑤슈가 아름답고 존중받는 예술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다음 세대가 이어받지 않아 사라진다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미서명 사진은 야오젠핑자수예술관 제공)


글| 왕레이(王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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