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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옌촌, 후이저우(徽州)의 옛 발자취쓰시옌촌, 후이저우(徽州)의 옛 발자취


인민화보

2018-08-08      인민화보

한폭의 수채화같은 쓰시옌촌 전경 사진/류제(劉傑) 

쓰시옌(思溪延)촌은 장시(江西)성 우위안(婺源)현 쓰커우(思口)진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회벽에 검푸른 기와를 얹고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조각공예가 특징인 후이저우(徽州)식 건축물은 며칠 밤을 지새워도 모자랄 과거의 아득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듯하다.

고요한 풍경에 얽힌 추억
남송(南宋) 경원(慶元) 5년(AD 1199년)에 조성되기 시작한 쓰시옌촌은 8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 이 마을을 만든 유(俞) 씨는 ‘물고기가 청계수(淸溪水)를 그리워하다’라는 뜻을 담아 마을의 이름을 지었다. 

쓰시옌촌은 후이상(徽商, 후이저우 상인) 문화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이상들은 한 세대에 걸쳐 근검절약 정신으로 중국 역사에 묵직한 한 획을 그었다. 지난 수백 년 간 이 마을 출신의 상인들은 지혜와 끈기로 막대한 부를 벌어들였고, 당당하게 고향으로 돌아와 전답이며 땅을 사들여 서원(書院)을 세우거나 저택, 누각, 사당, 패방(牌坊) 등을 지었다.

쓰시옌촌에서는 전원 풍경과 고풍스러운 후이저우 건축물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마을의 건축물은 명나라에서 청나라에 걸친 약 100년 동안 지어진 상업주택이 많다. 건축물은 청석판(靑石板) 돌길 위에 세워졌다. 뒤로는 우뚝 솟은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청계수와 꽃밭을 접하고 있다. 수려한 산봉우리와 굽이치는 능선, 맑고 투명한 물이 흐르는 풍경 속에서 오밀조밀 솟은 집들은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오래된 민가들을 멀리서 바라보면 외관상 널찍한 회벽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군데군데 높낮이가 다른 창문이 조금씩 박혀 있어 전체와 부분, 면(面)과 점(點)이 대비되는 ‘도법자연(道法自然)’의 이치가 함축돼 있다. 안팎의 벽은 말머리처럼 생긴 마두(馬頭)벽과 ‘ㅅ’자형 지붕을 지탱하는 벽인 산(山)벽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마두벽의 처마 끝은 비죽 올라간 비첨(飛檐)의 형태로, 짙푸른 하늘과 담장 끝의 윤곽이 공간적 운율미를 더한다. 이곳은 1987년 푸젠(福建)방송국에서 기획한 드라마 <요재(聊齋)>의 촬영지이자 중국 현대 시인 다이왕수(戴望舒, 1905-1950)의 시 <비 내리는 골목(雨巷)>에서 ‘라일락 처녀’가 조용히 걷는 거리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매년 봄이 되면 쓰시옌촌에는 유채꽃 물결이 넘실댄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황금빛으로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마을은 금빛 찬란한 유채꽃과 수묵색(水墨色) 건물이 어우러져 색이 선명한 화첩이 된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시에서 ‘넓은 뜰에 이끼가 태반이나 끼었고, 복숭아꽃 다한 뒤에 유채꽃이 무성하다(百畝庭中半是苔, 桃花凈盡菜花開)’라고 표현한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촌락 사진/류제(劉傑) 

문화가 압축된 고건축물
쓰시옌촌은 수많은 문인(文人)과 묵객(墨客)들을 배출했다. 이곳은 선비 기질을 지닌 상인을 뜻하는 유상(儒商)들의 ‘1번지’로서 한때 ‘강남의 곡부(曲阜·공자의 고향)’이자 ‘서향(書鄕)’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였다. 송나라에서 청나라 말기까지 쓰시옌촌 출신의 벼슬아치만 2665명에 달했고 그들이 지은 책은 3100권이 넘는다. 이 중 172권이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됐다. 송나라 때 유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와 중국 근대의 철도 전문가 잔톈유(詹天佑)도 모두 이곳 출신이다. 이처럼 인문학적 기질이 짙게 배인 쓰시옌촌의 독특한 분위기와 문화적 특성이 집약된 고건축들은 이곳의 오래된 역사를 가만히 속삭이고 있다.

총청당(聰聽堂)은 쓰시옌촌의 이름난 선비 집안의 저택이다. 후이상 출신 김가조(金嘉藻)의 선조가 청나라 건륭 연간에 지었으며, 지금도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다. 김가조에게 열 명의 자녀가 있었던 까닭에 ‘김씨십가(金氏十家)’로 불리기도 한다. 김씨십가는 자손 대대로 번창했고 학자 기질도 그대로 계승됐다. 집안에서 선비와 관료, 상인이 고루 배출되었으며 유학의 대가들과 빈번하게 교류했다. 지금도 저택에는 청나라 건륭 연간 산문 유파인 동성파(桐城派)의 영수(領袖)이자 유학의 대가인 요내(姚鼐)가 손수 쓴 편액이 보존되어 있다. 저택은 중국 전통 건축양식인 ‘이진 삼개간(二進三開間·진입로가 두 군데, 대문 및 뒤뜰로 가는 좌우 양측문)’ 구조다. 입구에 앞뜰이 있고 앞뜰 우측으로 원문(院門)이 있으며 좌측으로는 사립문이 나 있다. 한가운데에 위치한 대문은 수마청전(水磨靑磚)이라 불리는 물갈음질한 내화벽돌로 쌓았으며 처마 끝은 위쪽으로 비죽이 치켜 올라가 있다. 벽돌에 새겨진 조각도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다.

명훈당(明訓堂)은 세 채의 건물이 이어진 고택이다. 저택 주인 진융추(金永俅)도 쓰시옌촌의 대표적인 후이상 중 한 명이다. 그는 광저우(廣州)에서 동향 출신 친구인 잔스롼(詹世鸞)과 함께 사업을 했는데, 잔스롼은 철도 전문가 잔톈유의 조부이다. 진융추가 잔스롼과 광저우 대외무역항인 ‘십삼행(十三行)’을 통해 외국과 직접 거래한 결과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영국인들이 아침마다 커피 대신 장시(江西)성 우위안(婺源)현의 녹차를 홀짝이게 되었다.

쓰시옌촌의 오래된 다리 사진/류제(劉傑) 

여경당(余慶堂)은 청 건륭 연간 때 지어진 고옥(古屋)이다. 이곳의 주인인 진원젠(金文諫)은 유명한 차 상인이었다. 봉건시대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상인을 제일 끝에 두었기 때문에 이들은 부(富)는 거머쥐었지만 귀(貴)한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이런 탓에 집도 관저나 왕부(王府)처럼 화려하거나 으리으리하게 짓지 못했다. 조정에는 상인들의 집 대문이 정남(正南) 방향으로 나서는 안 된다는 규정까지 있었다. 그런데 여경당의 문을 살펴보면 ‘상(商)’자의 형태로 되어 있다. 문 처마와 문루(門樓)는 ‘상’자의 윗부분에 속하고, 청석(青石) 문방(門枋)은 그 아래 ‘입 구(口)’자에 속한다. 문방 바깥으로는 내화벽돌이 쌓여 ‘문 문(門)’자를 이루고 있다.

오래된 골목을 돌며 채소를 파는 행상인 사진/류제(劉傑) 

앞서 세 곳의 고택 외에도 쓰시옌촌의 건축물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풍격을 지니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명나라 때 지어진 다리인 ‘통제교(通濟橋)’와 불교 색채가 가미된 기둥 ‘여래불주’가 있다. 오래 전 마을과 보(洑)를 결합해 지은 건축물 형태 중 몇 안 되게 남아 있는 풍경이다. 마을에는 청나라 상인들의 저택이었던 ‘진원당(振源堂), ‘승유당(承裕堂), ‘승덕당(承德堂), ‘효우겸륭청(孝友兼隆廳)’ 등 건축의 걸작들도 남아 있다. 유씨객관(俞氏客館)의 격선문(格扇門)에는 각각 다른 형태의 ‘목숨 수(壽)’자 96개로 이뤄진 ‘백수도(百壽圖)’가 있어 ‘목조(木彫)의 명품’이라 일컬어진다. 이 밖에도 명 숭정(崇禎) 연간 광저우 지부(知府)를 지낸 여자이(余自怡)의 ‘관청(官廳)’, 명 천계(天啟) 연간 이부상서(吏部尚書) 여무형(余懋衡)의 ‘천관상경(天官上卿)’, 만력(萬歷) 연간 호부우시랑(戶部右侍郎) 및 공부상서(工部尚書)를 지낸 여무학(余懋學)의 ‘상서제(尚書第)’, 청 도광(道光) 연간 차상(茶商) 여현휘(余顯輝)의 ‘이유당(詒裕堂)’ 등이 있다. 모두 회벽에 검은 기와로 지붕을 올렸고, 처마 끝이 올라간 비첨과 창각(戧角) 형태이다. 특히 벽돌, 돌, 목재 등 이른바 ‘삼조(三雕)’에 새긴 아름답고 정교한 조각이 돋보인다. 게다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배치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여 가히 ‘건축예술의 박람장’이라 할 수 있다.

쓰시옌촌의 청석판 돌길 양쪽으로는 푸릇푸릇한 이끼가 가득 껴 있고 안쪽을 따라 좁고 구불구불한 길들이 깊숙이 이어져 있다. 홀로 벽의 얼룩무늬를 감상하고 적막한 골목을 걸으며 발길이 석판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다 보면, 한층 고즈넉하면서도 아득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글| 류제(劉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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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연(緣)문화제’, 빙설의 정으로 인연을 이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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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관계를 이야기하며 한반도 미래를 탐색하다 -중한 미래발전 싱크탱크포럼 베이징서 개최

중국 차하얼(察哈爾)학회와 한국 국립외교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 아주경제신문사가 협찬한 ‘중한 미래발전 싱크탱크포럼’이 2017년 12월 11일 베이징(北京)에서 개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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