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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끝자락 천 년의 포구, 탄먼(潭門)


인민화보

2018-07-05      인민화보

하이난성의 대표적 어업마을인 탄먼 사진/ 마겅핑(馬耕平)

오래된 어촌 마을에 들어서면 길 양쪽에 즐비한 배의 노, , , 조개껍데기 등에 묻어 있는 정겨운 바다의 내음을 맡을 수 있다. 길가에 늘어선 공예품 판매점은 눈을 즐겁게 하고, 헬멧고둥, 장군나팔고둥, 황소입헬멧고둥, 새우, 해삼, 전복 등 짭조름한 해산물을 파는 가게는 구경하는 재미와 먹는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다.


물고기를 가득 싣고 부두로 돌아오는 어부들, 가격을 흥정하는 상인들, 거리를 오가는 자동차……옛 풍경과 현대 문명이 묘하게 어우러진 어촌의 모습은 방문자의 가슴에 조용한 파문(波紋)을 일으키며 ‘바다 향기’로 가득 찬 오래된 마을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보아오(博鰲)진 사진/쉬쉰(徐訊)


낡고 부서진 어선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 개성있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사진/ 마겅핑(馬耕平)


탄먼진()은 하이난(海南)성 충하이(瓊海)시 동부 연안에 있는 89.5km2 면적의 어촌 마을이다. 해안선 길이는 18km이다. 이곳 어민들은 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싼사(三沙) 지역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온 특수한 집단으로, 남중국해를 ‘조상의 바다(祖宗海)’로 모신다. 또한 이곳은 남중국해 지역 사상 최초로 농사가 지어진 곳이자 해상 실크로드의 선도지역이기도 하다.


항해의 바이블, ‘경로부(更路簿)

탄먼 어민들의 역사는 기원전 진()·한()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략 기원전 200, 당시 원주민들은 남중국해에서 항해와 생산활동을 하고 있었다. 통신기술이 없었던 때 어민들은 각자의 지혜를 모아 ‘항해의 바이블’이라 일컬어지는 ‘경로부’를 펴냈다.


‘경로부’는 하이난에 살던 사람들이 남중국해를 접하고 개발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고대인들의 남중국해 항해 경험이 차곡차곡 담겨 있어 당시 선장들이라면 필수적으로 챙겨봐야 할 책이었다. ‘경로부’를 터득한 자는 바다의 스승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경로부’ 한 켠에는 ‘대담(大潭)에서 동해(東海)를 지나 건손(乾巽)으로 12()을 지났다(自大潭過東海,用乾巽使到十二更)’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대담’은 탄먼항을 가리키고 ‘동해’는 시사군도(西沙群島) 해역을 말한다. ‘건손’은 항해의 각도를 말하며, ‘경’은 항해 거리의 단위로서 1경은 약 12해리에 해당한다. 비록 짧은 문구지만 출발지, 목적지, 항해의 방향과 거리를 명확히 표시하고 있다. 게다가 ‘경로부’는 남중국해에 있는 모든 섬과 암초를 현지 방언을 써서 언급하고 있다.


탄먼의 어부 출신 쑤청펀(蘇承芬) 할아버지는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경로부’를 손에 쥐고 “당시 남중국해 고기를 잡으러 남쪽 바다로 내려오는 어민들은 모두 ‘경로부’에 의존했다. 어민들은 남중국해에서 포획한 해산물을 바다나 산호초 위에서 말리고, 성주(星洲·싱가포르)로 가서 석유나 베 등과 바꿔오곤 했다”고 말했다.


탄먼 마을로 들어서면 길 옆으로 늘어선 찻집 사이사이로 남중국해를 종횡무진 누비며 물고기를 잡던 노()선장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깊은 주름과 검게 그을린 피부가 평생 뜨거운 뙤약볕, 거센 파도와 싸워온 이들의 노고를 말해주고 있다. 이제는 현대화된 GPS 설비가 ‘경로부’를 대체했지만, 신세대 선장들은 여전히 기술의 힘을 빌려 ‘조상의 바다’를 누비고 있다.


탄먼 거리의 벽화 사진/ 마겅핑(馬耕平)


‘항해의 바이블’로 일컬어지는 ‘경로부’ 사진/ IC


배를 만들고 바다를 누벼라

2013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탄먼진을 방문해 어민들에게 “배를 만들어 바다를 누비며 대어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부터 탄먼 마을은 180도 변하기 시작했다. 곳곳이 움푹 패여 있던 시멘트길은 쭉 뻗은 아스팔트 도로로 바뀌었다. 툭하면 끊기기 일쑤였던 전기도 원활하게 공급되기 시작했다. 마을을 걸으면 눈길 닿는 모든 곳에 바다와 연관된 색채가 입혀졌다. 오래된 목제 어선은 튼튼한 대형 철강어선이 되어 어민들의 남중국해 출정을 기다리며 포구에 정박되었다.


탄먼의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해양콘텐츠를 소재로 한 공예품 가공업의 발달로 7천명이 넘는 취업인구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현재 탄먼진의 3만명 인구 가운데 최소 절반 이상이 바다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다. 충하이에서는 도시화도 진행 중이다. 과거 어업 위주의 산업 구조는 현재 어업, 요식서비스업, 공예품 가공판매업 등 다양한 산업과 연계된 복합 구조를 형성했다.


또한 신 산업에 문화적 요소를 도입해 ‘해산물 줍기 페스티벌(趕海節)’이라는 마을 축제를 만들어 방문객들이 현지 어민들의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 페스티벌은 매년 다양한 주제로 열린다. 이 기간에는 민간의 전통 제사와 마을 운동회 외에도 ‘바다 보물찾기’, ‘연날리기 스페셜 공연’, ‘우수제품 장터’, ‘포구의 밤 공연’ 등 다채로운 부대 행사가 열린다. 방문객들은 다양한 체험과 참여를 통해 색다른 현지 문화를 느낄 수 있다.


탄먼의 거리 풍경 사진/ 마겅핑(馬耕平)


탄먼의 해산물 사진/ IC

 

남중국해가 선사한 풍부한 해산물

‘중국의 해산물은 하이난에서, 하이난의 해산물은 탄먼에서’라는 말은 과연 사실이었다. 심해에서 건져 올린 산해진미는 훌륭한 맛을 자랑했다. 근해로 나가는 어선들은 매일 같이 가장 신선하고 보기 좋은 해산물을 싣고 오고, 원양작업을 하는 대형 선박들은 하루 이틀에 한 척 꼴로 돌아오기 때문에 탄먼에서는 언제든지 신선한 어패류를 맛볼 수 있다. 바닷가재, 전복, 해삼은 물론 싼사 먼바다에서 잡아온 우럭, 병어, 큰양놀래기, 수염고등까지 탄먼은 그야말로 남중국해 대표 해산물의 집성지나 마찬가지다.


탄먼의 해산물은 품질이 좋은 까닭에 조리도 매우 쉽다. 별다른 과정 없이 거의 자연의 맛 그대로 즐기면 된다. 종업원이 내온 그릇에는 생선, 새우, 소라, 게 등 진짜 바다생물이 빠짐 없이 담겨 있었다. 요리사의 역할은 잡아온 해산물을 갈라 깨끗이 씻고 작게 토막 내는 것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모두 식객의 몫이다. 냄비에 물이 끓으면 소라, 새우, 생선을 순서대로 넣고 그것이 저절로 ‘맛있는 요리’로 변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탄먼 해변에 조개껍데기를 주우러 온 관광객들은 노인 선장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하거나 어민들의 집에 초청을 받기도 한다. 습하고 짠 바닷바람과 가지런히 정박된 어선, 이 마을의 모든 사물에는 드넓은 바다의 고요함, 어부들의 넉넉한 인심이 잔잔히 녹아 들어가 있었다.



글|판정(潘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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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연(緣)문화제’, 빙설의 정으로 인연을 이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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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관계를 이야기하며 한반도 미래를 탐색하다 -중한 미래발전 싱크탱크포럼 베이징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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