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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서쪽 ‘유리의 고장’, 류리취


인민화보

2018-06-01      인민화보

융딩(永定) 강변에 ‘유리의 고장’이자 ‘전국생태문화마을’로 유명한 류리취촌이 있다.


유리는 궁전·사당·왕릉과 같은 중국 고대 건축물과 현대 중국식 건축물에 있어 중요한 장식 부재로서 중국 건축사 가운데 대체 불가능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유리는 건축자재일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역사·종교·민속 다방면의 문화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중국 건축학의 대가 량쓰청(梁思成) 유리에 대해 “유리와(琉璃瓦) 분명 중국 예술의 특징을 대표한다”고 말한 있다.


베이징 서부 먼터우거우(門頭溝)구에 위치한 류리취(琉璃渠)촌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유리 관요(官窯)’로서, 일찍이 ‘관수용 유리’를 제작하는 곳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벌써 750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곳 가마의 불은 여전히 뜨겁게 타고 있다.

 

유리는 궁전·사당·왕릉과 같은 중국 고대 건축물과 현대 중국식 건축물에 있어 중요한 장식 부재다.

 

류리취촌에서 생산된 유리

 

류리취촌에서는 곳곳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  유리문화의 흔적을 엿볼  있다.

 

수백 년의 시간을 간직한

류리취촌이 유리와 끊을 없는 인연을 맺게 시점은 ()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변에 유리제작에 필요한 고품질의 혈암(셰일) 풍부했고 교통이 편리했던 것이 배경이다. 1263 원나라 궁전부(宮殿府) 류리취촌에 유리국() 관하의 유리 제작용 가마를 설치했다. 이후 () 건륭(乾隆) 연간에 베이징 유리공장이 지금의 장소로 자리를 옮기면서 유리국을 위해 수로를 정비했는데, 이로 인해 ‘류리취’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류리취촌은 또한 수백 유리제조업으로 발전을 이루며 ‘유리의 고장’이라는 지위를 다져왔다


석판로(石板路) 걷노라면 유리벽·유리 패루(牌樓)·과가루(過街樓)·마을 역사전시관 곳곳에서 수백 유리문화의 흔적들을 발견할 있다. 밍주(明珠) 유리와 공장은 본래 고궁(故宮, 자금성) 유리와 공장이었다. 입구에는 길이 107m 유리 문화벽이 세워져 있는데, 청룡·백호·주작(朱雀)·현무(玄武)·소나무·대나무·매화 도안, 토대·처마·기둥 도안, 받침·처마·기둥 등에 모두 7000 조각의 유리가 사용되었다. 다른 공장인 시산(西山) 유리와 공장 안에는 ‘구사벽(九獅壁)’이란 것이 있다. 커다란 사자 9마리와 새끼 사자 수십 마리로 꾸며진 벽으로,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베이징시 먼터어구 전통 유리제조기예는 2 국가급 비물질문화(무형문화)유산목록에 등재되었다. 현재 류리취촌의 전승인들로는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 전승인인 장젠궈(蔣建國) 주축으로 국가급·시()급·구() 전승인 5명이 있다.


류리취촌에서 제작된 유리와는 오늘날까지도 자금성과 천단(天壇)·청동릉(淸東陵)·청서릉(淸西陵) 고대 건축물 보수에 있어 결코 빠질 없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류리취촌은 공화국 절반 이상의 고대 건축물 임무를 책임지고 있다. 류리취촌 유리문화 전문가 샤오융왕(肖永旺) 얼굴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류리취촌 민가


평온하면서도 상서로운 마을의 분위기는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유리의 새로운 미래

류리취촌 마을 사람들은 크거나 작게 모두 유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샤오융왕의 부친과 동생의 경우 타지에 살고 있지만 역시 유리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창장(長江) 이북의 유리 기술자 대부분은 류리취와 관계가 있다. 전세계 어디든 유리가 있는 곳이면 중국인이 있을 것이고, 이들 중국인들이 가진 기술의 뿌리를 살펴보면 많거나 적거나 류리취촌과 연관이 있다. 샤오융왕의 말이다.


류리취중학교는 10 전부터 도예·유리공예 중심의 노동예술교육활동을 진행해 오고 있다. 학교는 류리취촌의 우위를 활용해 반죽·빚기·조각·채색 10 공예수업을 개설했다. 현지인들은 많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소조(燒造) 역사를 이해하고 장래에 유리공예를 전승할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류리취촌은 최근 ‘중국역사문화명촌(名村) ‘유리의 고장’이라는 이색 우위를 살려 ‘중국유리문화제’를 여러 차례 개최, 전국 각지의 유리문화 애호가들과 전문가들의 발길을 불러 모았고 이를 통해 지역 관광업 발전을 이끌었다. 류리취촌은 또한 물업(物業)관리회사와 관광발전회사를 설립했으며, 생태자원과 유리문화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문화적 함의를 다양하게 하고 유리문화를 널리 알렸다.


류리취촌은 현재 유리제조체험단지인 ‘유리공방’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유리공방’ 조성이 완료되면 누구나 직접 유리 제조 과정을 체험함과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유리제품을 만들 있다.


중국 역사·문화의 명촌

유구한 유리문화뿐만 아니라 류리취촌은 원형 그대로의 명·청대 건축물과 수려한 환경으로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삼관각과가루(三官閣過街樓), 관제묘(關帝廟), 유리상인저택(琉璃廠商宅院), 만연동선(萬緣同善) 찻집……. 들쑥날쑥 자리잡은 가옥들과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리, 평온한 분위기는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류리취촌은 옛날 서산대도(西山大道)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먀오펑(妙峰) 진향고도(進香古道) 마을 전체를 관통한 덕에 찬란한 고도문화를 꽃피울 있었다. 이곳은 또한 공업과 농업·상업이 비교적 고르게 발달했고, 동쪽의 과가루에서부터 서쪽의 관제묘까지 이르는 길에는 상점들이 즐비해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전체적인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아 어렴풋하게나마 옛날의 모습을 엿볼 있다.


류리취촌에서는 마을 동서로 있는 첸제(前街) 허우제(後街) 갈래 길이 중심 도로다. 시멘트길인 첸제는 옛날 경서고도(京西古道) 서산대도를 가로지르고, 이미 석판로로 변모한 허우제는 작은 골목들과 함께 마을의 사합원(四合院, 베이징의 전통 주택 양식)들을 연결한다. 현재 마을에는 80 이상 사합원과 삼합원(三合院) 가량 남아 있다. 보존이 잘된 것들로는 유리상인저택, 덩씨(鄧氏)가문사합원, 궈씨(郭氏)삼진(三進)사합원 등이 있다.


류리취촌에는 수령 100 이상인 고목이 그루 있고, 500 이상 일급 고목도 그루 있다. 문화유산과 고목·명목(名木)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마을에서는 일련의 고목·명목 건설프로젝트를 실시, 고목·명목자원 기록물을 만들어 정기검사 등을 통해 고목·명목들의 변화를 체크하고 있다.


류리취촌은 또한 환경보호를 위해 ‘석탄의 가스교체(煤改氣)’를 추진하며 유리 제조 발생하는 폐기가스 배출량을 감소시키고자 노력했다.


류리취촌은 ‘수도 녹색마을’ ‘신()농촌건설 선진마을’ ‘가장 아름다운 농촌’ 영예로운 수식어로 빛나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향후 현지 환경과 역사·문화적 강점을 적극 활용해 류리취촌을 ‘징시(京西, 베이징 서쪽) 최대 고촌 마을’로 만들 것이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유리 문화와 류리취촌을 알릴 계획이다.


 

글|양윈첸 사진|천젠, 돤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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