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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번(娘本), 러궁 탕카(唐卡)의 거장


인민화보

2018-04-27      인민화보

냥번

바옌카라산에서 발원한 황허(黃河)는 칭하이(靑海) 동부에서 거대한 반원을 그린 뒤 동쪽으로 흘러간다. 바로 칭하이성 퉁런(同仁)이 있는 곳이다. 시짱(西藏·티베트) 사람들은 퉁런을 ‘러궁(熱貢)’이라 불렀는데, ‘금빛 골짜기’라는 뜻이다. 황허 품 안에 자리잡은 러궁은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을 탄생시켰으며, 그 정수가 곧 ‘러궁 탕카’다. 러궁 탕카 화사(畫師)들은 자신만의 스토리로 이 땅에 예술인의 바람과 그리움을 불어넣고 있다. 냥번은 그러한 예술인들 중 한 사람이다.

냥번 탕카 <오대천당(五大天堂)>

냥번 탕카 <석가모니(釋迦牟尼)> (흑탕)

냥번 탕카 <천수천안관음 (千手千眼觀音)> (흑탕)

12살 때부터 걷기 시작한 ‘취경로(取經路)’
냥번은 1971년생으로 퉁런현(縣) 우툰상좡(吾屯上庄) 출신이다. 마을의 여느 아이들처럼 가난해 학교를 다니지 못하다가 12살 때 그림 실력이 좋던 마을 사람을 스승 삼아 탕카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냥번의 스승은 훗날 국가급 공예미술대사가 된 샤우차이랑(夏吾才讓)이다. 

냥번이 기억하는 스승은 인자하면서도 신뢰를 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에게는 매우 엄격했다. 냥번은 스승으로부터 밑그림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해 구도를 잡는 법, 연마하는 법, 색을 입히는 것 등을 배웠다. 그러느라 가끔은 바닥에 한 번 자리를 잡으면 몇 시간씩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선과 색의 세상에서 보낸 시간은 어리석음을 떨치고 깨달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탕카예술은 그렇게 어린 냥번에게 비교할 수 없는 미적 즐거움을 선사했다. 15살이 됐을 때 냥번은 스승 샤우차이랑을 따라 돈을 벌기위해 길을 나섰다. 쉰화(循化)의 문도사(文都寺), 황중(湟中)의 탑이사(塔爾寺) 등 냥번은 스승을 따라 여러 사찰을 돌아다녔다. 18세 때 스승으로부터 혼자서 그림 그리는 것을 허락 받았고, 20세가 되자 냥번의 탕카 실력은 더욱 성숙해졌다. 스승처럼 자신만의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1990년대 초는 러궁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있어 암담한 시기였다. 그들은 탕카 예술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했고, 일부는 탕카 회화를 포기하기까지 했다. 냥번 역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1년 12월 그는 러궁을 떠나 탐색의 길에 올랐다. 러궁을 떠난 탕카 예술인들은 냥번을 비롯한 몇몇이 최초였다. 

1996년 냥번은 제자들과 함께 쓰촨(四川)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우연히 국가 1급 미술가 뤄자콴(羅家寬)과 인연을 맺게 됐다. 냥번은 뤄자콴을 스승으로 모시며 한(漢)족의 전통 ‘공필(工筆)’회화기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냥번의 안목과 예술적 표현기법이 훨씬 풍부하고 다양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탕카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1998년, 27세의 냥번은 시짱불교의 성지인 라싸(拉薩)로 갔다. 라싸의 탕카는 짙고 무거운 분위기가 특징인 반면, 러궁의 탕카는 색감이 상대적으로 명쾌해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시짱에서 우리는 러궁 예술인으로서의 브랜드를 만들고자 했다. 청두(成都)의 뤄자콴 스승님께서는 우리가 시짱에서 버틸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며 우리의 시야를 틔워주셨다.” 곧 라싸 탕카와 러궁 탕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낸 냥번은 점차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이때 제작된 냥번의 작품들은 풍부한 색 사용을 특징으로 한다. 배색만 160여 가지에 달했다. 특히 녹색과 옅은 남색, 금색, 황색, 빨강색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들은 탕카 색채체계의 주요 색들이다. 시짱지역의 다른 화사들과의 공통점이라면 냥번 역시 고순도의 색깔을 즐겨 사용함으로써 선명하고 화려한 색감의 화면 효과를 연출했다는 것이다. 

계승과 창조를 위한 분투 
2003년은 냥번에게 있어 매우 남다른 의미의 한 해였다. 은사였던 샤우차이랑이 세상을 떠나며 그에게 남긴 한 마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탕카를 알리고 탕카를 사랑하게 해달라”는 당부와 기대가 냥번으로 하여금 앞으로 가야할 길을 다시금 고민하게 만들었다. 수 년간 시짱에서  고군분투하던 냥번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시장은 시짱이 좋았지만 나의 뿌리는 러궁”이라고 말했다. 

2006년 여름 냥번은 그간 힘들게 모은 돈과 탄탄히 쌓은 실력, 그리고 청두와 시짱에서 맺은 인연을 가지고 고향인 러궁으로 향했다. 당시 마을의 화사들은 이미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냥번을 지켜보며 외지에서 성장할 기회를 찾으라고 계속해서 조언했다. 하지만 냥번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러궁 예술도 이렇게 독특하고 풍부하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러궁을 알려야 한다.” 

고향에 돌아간 냥번은 은사의 유언을 떠올리며 마음 속 열정을 더욱 불태우고 행동에 박차를 가했다. “스승님께서 돌아가실 때, 탕카학교를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자신이 못다 이룬 일을 해주시길 바라셨다.” 

은사의 마지막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냥번은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러궁예술을 계승하고 널리 알릴 러궁화원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2008년, 면적 2000m2의 러궁화원이 마침내 문을 열며 학생들을 받기 시작했다. 그 즈음 탕카예술은 봄날을 맞았다. 2006년 중국 1차 무형문화유산목록에 포함된 데 이어 2009년 유네스코가 탕카를 인류 무형문화유산목록에 등재한 것이다. 탕카 인지도가 높아짐에 따라 러궁화원도 점차 유명세를 타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러궁화원은 오늘날 퉁런지역 최대 화원이 되었으며, 전국 각지의 사람들에게 러궁 탕카예술을 소개하는 중심지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 년간 러궁예술에 종사하고 이를 알리면서 냥번 역시 성장했고 그의 노력은 인정을 받았다. 2007년 6월 ‘1호 중국 탕카대사’ 칭호를 얻은 데 이어 2009년 4월 문화부 선정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적 계승자가 된 것이다. 또한 2009년 그의 작품 <문수보살>은 ‘중국 공예미술 문화창의상’ 금상을 수상했고, 2012년에는 <천수천안 관음흑금(千手千眼觀音黑金)>이 ‘2012 유사유가(儒仕儒家)·백화배(百花杯)’ 중국 공예미술정품 금상을 거머쥐었다. 2013년 1월에는 ‘전국 공예미술대사’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1년 후인 2014년 1월에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 초청으로 ‘중국-프랑스 수교 50주년 기념 대형문화예술전시회’에 참가함과 동시에 ‘문화중국’ 상을 수상했다. 

냥번은 현재 탕카 대가 및 예술가들과 함께 전국 순회전시회를 개최하여 최고의 홍보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러궁의 브랜드는 곧 대가의 브랜드이며, 이는 지역 전체의 영광이다. 언젠가 러궁이 전국 최고의 시짱문화 기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냥번 탕카 <미륵보살(彌勒菩薩)>

냥번 탕카 <석가모니와 십팔나한(釋迦牟尼與十八羅漢)>

탕카예술의 새 화파(畵派)를 이끌다
다년간의 학습과 노력을 통해 냥번은 은사 샤우차이랑이 구축한 러궁의 현대적 탕카예술화파를 발전시키고 시짱 전통불교 각 교파(敎派)의 회화예술기법과 풍격을 흡수했다. 뿐만 아니라 둔황(敦煌)석굴과 한족 전통공필회화의 예술적 기교와 표현방식을 융합시켰다. 나아가 시짱불교와 한족 불교회화 예술의 예술기법과 창작경험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새로운 러궁탕카 예술화파를 형성했다. 

색의 처리와 운용은 냥번 탕카회화에서 중요한 기본 기법이다. 오랜 시간 이어온 창작의 삶에서 냥번은 ‘암(暗)으로 명(明)을 표현하고, 철(凸)로서 요(凹)를 나타내는’ 탕카 운염(暈染)기법을 찾아냈다. 또한 전체 화면의 통일감과 조화로움을 중시하면서, 묵선(墨線)으로 전체의 윤곽을 그린 뒤 담색(淡色)을 펼치는 방식으로 아름다우면서도 탈속적인 예술적 효과를 구현했다. 그는 순도가 높고 과장이 심한 색채로 불상을 표현하기를 즐기는데, 이를 통해 신불(神佛)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곳곳에 부처의 위대함을 드러낸다.

지난 1월 18일 중국미술관에서  ‘설역단청(雪域丹青)·장심축몽(匠心築夢)-칭하이 탕카회화예술 정품전’ 개막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관람객은 냥번의 탕카 <오대천당(五大天堂)>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뒤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이 관람객은  “냥번의 작품을 보니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냥번의 탕카에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선이 매우 부드럽고 매끈하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선 운용의 정교함과 섬세함은 물론, 적재적소에 최적의 표현을 한 그의 높은 경지를 확인할 수 있다. 마음먹은 대로 선을 운용하는 것, 냥번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비범한 예술적 기질이다. 


글|장진원(張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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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연(緣)문화제’, 빙설의 정으로 인연을 이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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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관계를 이야기하며 한반도 미래를 탐색하다 -중한 미래발전 싱크탱크포럼 베이징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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