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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를 가슴에 품은 화가, 한위천


인민화보

2018-04-04      인민화보

한위천 , 제 10·11·12 기 전국인민대표회의 대표 , 중국예술연구원 초빙연구원 , 중국미술가협회 회원 , 중국서예가협회 회원, 한단( 邯鄲) 양광( 陽光)그룹 회장 

한위천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시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시짱 인민들의 삶과 일상을 세밀하게 표현해내 많은 호평을 받았다. <한위천 서예집>, <한위천 회화∙사진집>, <한위천 풍경예술 사진작품집> 등을 출판했다. 
시짱(西藏·티베트)에 가 본 사람이라면 ‘설역고원(雪域高原)’으로 불리는 그곳의 쏟아지는 햇빛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천연색의 새하얀 설산, 진초록 풀빛, 새파란 하늘과 꽃들은 이따금씩 이곳이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인지조차 헷갈리게 만든다. 시짱을 방문하는 화가들 역시 그런 순수한 아름다움이 주는 시각과 감각적 충격, 정신적 해방감에 강하게 사로잡히곤 한다. 한위천(韓玉臣)도 그들 중 하나이다.

1954년에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몹시 좋아했다. 1963년 9살의 그가 만든 레이펑(雷鋒, 중국 인민해방군의 모범병사) 목판 초상화를 돌려본 학교 선생님과 급우들은 그에게 많은 격려와 칭찬을 보냈다. 1970년부터는 중국 최고의 미대인 중앙미술학원(中央美術學院)의 리화(李樺), 쑤가오리(蘇高禮), 량위룽(梁玉龍) 선생을 비롯해 이름난 화가인 장원신(張文新)을 사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2년, 그의 예술세계는 시짱과 처음 인연을 맺는다. 그해 화가 둥시원(董希文)의 집에서 시짱 스케치를 목격한 그는 시짱의 색채와 화면이 주는 강렬한 시각적 충격에 빠졌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 속에는 시짱을 향한 열정이 샘솟기 시작했다.

1997년 중국미술관(中國美術館)에서 천단칭(陳丹青)의 작품 <풍작지에 쏟아진 눈물(淚水灑滿豐收田)>을 보고 또 한번 감명을 받은 그는 마음속 뜨거운 열정을 재확인한다. 마침내 2006년이 되자 그는 처음으로 시짱 땅을 밟는다. 칭하이(青海)성 시닝(西寧)을 거쳐 거얼무(格爾木)와 퉈퉈허(沱沱河)를 지나 탕구라(唐古拉)산에 올랐다가, 다시 당슝(當雄)을 경유해 라싸(拉薩)에 도착한 뒤 린즈(林芝)와 르카쩌(日喀則)를 방문했다. 여정을 거치는 동안 시야에 들어온 흰 구름과 새파란 하늘, 설산과 빙하, 시짱 현지 주민들의 평화로운 일상과 아름다운 풍경은 그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때부터 압축된 에너지가 폭발하듯 그의 시짱 스케치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그는 이제까지 20여 차례 시짱을 방문했다. 사진이나 시(詩)만으로는 순수한 미(美)의 결정체로부터 받은 감동과 충격을 모두 표현해 내지 못했다. “드넓은 대지, 푸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 초원과 설산의 장엄한 아름다움과 고원 주민들의 투박한 삶은 나에게 세상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순수한 인간사회의 극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지요. 그곳은 인류의 본성이 살아 숨쉬고, 인간의 영혼이 맑게 빛나고 있는 곳입니다.”

<양치는 여인(牧羊女)>

<두 오누이(兄妹倆)>

<자애(慈祥)>

목숨을 걸고 그린 그림
<양치는 여인(牧羊女)>으로 제152회 프랑스 국립예술살롱전 금상 수상, <길 위의 참배(朝拜路上)>로 제225회 프랑스 예술가살롱전 동상 수상, <두 오누이(兄妹倆)>로 제12회 전국미술작품전 입선, <상주, 성스러운 호수(聖湖桑珠)>와 <새벽빛(晨光)>으로 중국유화사 100년 회고전 입선…… 시짱 고원을 소재로 한 그의 유화 작품은 최근 국내외 주요 예술전에서 입선하거나 여러 상을 수상했다. 비(非) 미대 출신 화가로서는 대단한 영광이자 많은 땀과 노력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런 성과의 배경에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그만의 사연이 숨어 있다.

2011년, 그는 시짱의 해발 5200m 지점으로 향했다. 야크떼를 발견한 그는 흥분하며 달려가 카메라를 들이댔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 숨을 참았더니, 갑자기 온 지구가 빙빙 도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이대로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어.” 여러 번의 시짱  방문 경험이 알려주는 직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주변에 도움 받을 곳이 없으니, 살아남으려면 혼자 힘으로 버텨야겠다.” 차로 돌아온 그는 천천히 좌석에 앉은 후, 오른손으로 왼손목 위의 심경혈(心經穴)을 찾아 있는 힘껏 눌렀다. “한위천! 한위천! 여기서 죽을 순 없어, 버텨야 돼! 너를 따라 시짱에 온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친구들을 데리고 다시 돌아가야지!” 속으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외쳤다. 그렇게 30분 남짓 지났을까, 가슴의 답답함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심박도 점점 안정을 찾았고, 오락가락했던 정신도 차츰 돌아왔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신이 저를 돌보신 그때의 경험 덕분에 이튿날 아침 아리(阿里)지구 동춰(洞措)에서 제 유화작품 <양치는 여인>과 꼭 같은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죠. 등에 망태기를 진 젊은 여인이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수백 마리의 양을 목장으로 몰아넣는 모습이었는데, 그야말로 한 폭의 유화 같았어요.”
그는 <양치는 여인>에서 널찍한 구도를 잡고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며 울타리를 열어 양떼를 풀어주는 여인의 모습을 담았다. 특히 이른 아침 막 울타리를 벗어나는 양떼들 위로 햇빛이 드리우며 만들어지는 반짝이는 실루엣과, 흰 양들이 빛에 반사되며 형성되는 다양하고 미묘한 색채 변화를 묘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게다가 화면을 등지고 서 있는 양치는 여인은 뒷모습만으로도 그녀만의 질박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녀의 머리에 둘러진 호숫빛 두건은 그림을 통틀어 가장 순수하고 청아한 빛깔을 띤다. 뿐만 아니라 이는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웜그레이 계열과 색채적으로도 뚜렷한 대비감을 나타낸다.

신앙의 힘(信仰的力量)

<길 위의 참배(朝拜路上)>

<대산심처(大山深處)>

질박함에 매료되다
시짱을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가 애착을 갖는 부분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그저 예술에서 말하는 미적 각도에서 접근해 그곳의 풍경에만 심취했지요. 하지만 나중에 진정 내 마음을 움직인 건 바로 그곳의 사람들이에요.” 복잡한 도시의 기업가인 그는 각종 생활조건이 열악한 설역고원에서 머리가 땅에 닿도록 엎드려 절하는 전통예절(磕長頭)을 행하는 현지주민들을 보고는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일종의 ‘가장 원시적이고, 단순하며, 순수하고, 욕망이 덜 섞인,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무언가’였다. 그는 끓어오르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붓을 들어 자신이 목격한 모든 순박함과 아름다움을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또 다른 유화작품 <길 위의 참배>에서는 떠오르는 태양에 반사된 역광을 통해 절을 하는 주민들을 묘사했다. 캔버스에 가득 찬 빛의 감각은 시짱 주민들의 몸에 내리쬔 태양빛이 만들어낸 황금빛 실루엣, 비탈길에 드리운 검붉은 토양빛, 공기 중에 퍼진 아득한 장밋빛 등 세 가지 색상이 어우러져 일으키는 미묘한 변화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사지를 엎드려 각양각색의 자세로 절하는 네 명의 시짱 주민들의 모습은 화면에 동적인 리듬감을 부여한다. 특히 각각의 인물묘사는 생동감 넘치면서도 전체적인 구도를 잡아주고 있어 한결 조형미를 더한다.
그가 의식적으로 시짱의 종교를 화폭에 담아내려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이 목격한 시짱인들의 일상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들의 삶을 좀 더 세밀하게 표현하고, 그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눈에 띄는 점을 찾아내려 했을 뿐이다.

그는 2012년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국제우수예술작품전에서의 일화를 떠올렸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한 백인 노부인이 그의 작품 <자애(慈祥)> 앞에서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는 의아한 생각이 들어 노부인에게 다가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노부인은 그림을 보니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라 그랬다고 답했다. 201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자애>를 전시했을 때도 한 네덜란드인이 그림 앞에 멈춰 서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한 차원 높은 철학이나 마찬가지예요. 더 높은 차원에서 인간의 본질을 반영하죠. 그런 예술을 할 수 있어서, 그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글|장진원(張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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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연(緣)문화제’, 빙설의 정으로 인연을 이어가다

땅거미가 내려앉자 아름다운 빛깔의 빙등(冰燈, 얼음 등)이 어둠에 가려있던 룽칭샤(龍慶峽)를 밝게 비췄다. 빙등은 마치 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 같았다. 2월 3일 밤, 한국 충남국악관현악단과 뜬쇠예술단이 한국 전통공연인 ‘사물놀이’의 빠른 리듬에 맞춰 무대에 등장한 것을 시작으로 ‘빙설정-중한 연 문화제’가 막을 올렸다. 이제 중한 연 문화제는 얼음과 눈을 다리 삼아 중한 양국의 우정을 이어가는 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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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관계를 이야기하며 한반도 미래를 탐색하다 -중한 미래발전 싱크탱크포럼 베이징서 개최

중국 차하얼(察哈爾)학회와 한국 국립외교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 아주경제신문사가 협찬한 ‘중한 미래발전 싱크탱크포럼’이 2017년 12월 11일 베이징(北京)에서 개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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