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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장사하려면 먼저 중국을 알아야죠”


인민화보

2017-12-05      인민화보

서만교 포스코ICT차이나 총괄법인장 사진/궈사사(郭莎莎)  

 

베이징 왕징(望京) 있는 포스코센터는 다른 여느 빌딩과는 사뭇 다르다. 입구에서부터 베어링, 기어, 자동차 모형, 각종 현대식 기계장치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형스크린에서는 철강을 제련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반복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2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둘러보면 엘리베이터 레일이 움직이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서만교 포스코ICT차이나 총괄법인장은 경제학 박사 출신이다. 검은색 뿔테안경에 푸른색 셔츠를 입은 그에게는 학구적 분위기와 함께 비즈니스맨으로서의 노련함도 엿보였다. 그의 사무실 켠에는 표구를 중국 행정조직도가 걸려 있었다. 한국 기업 담당자의 사무실에 중국 조직도가 걸린 모습을 보니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중국에서 장사를 하려면 먼저 중국을 알아야죠.” 법인장의 설명이다.

 

경제는 중국을 이해하는 첫걸음

법인장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생들이 2외국어로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많이 택했지만, 그는 굳이 비인기 언어였던 중국어를 택했다. “할아버지께서 어릴 자주 번체자를 알려주셨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중국 한자나 중국 문화에 친숙해졌지요.”


그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해외유학을 고민했다. 1993 처음 베이징(北京) 도착해 칭화(清華), 베이징대, 런민(人民) 등을 둘러본 칭화대를 유학지로 낙점했다. 1990년대 당시 개혁개방 초기였던 중국은 경제가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중국의 고속성장을 목격한 그는중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지켜보며 내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시기를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고했다.


그는 미국유학과 중국유학의 장단점을 꼼꼼히 따져보고 중국에서 거시경제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당시에는 경영학이나 경제학 전공이 개설된 대학이 많지 않았어요. 칭화대, 베이징대, 런민대를 비교해 보고, 칭화대 경제학과가 상대적으로 앞서 있다 싶어서 칭화대를 택했습니다.”


2 그는 칭화대 경제학 석사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바로 취업을 하는 대신 공부를 지속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솔직히 석사 과정 2 배운 지식으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MBA 과정을 밟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제대로 MBA 체계를 갖춘 대학원이 많지 않았죠.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박사를 하려고 했는데 아직 경제학의 기초가 잡혔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리저리 따져보고 다음 결국 사회과학원에서 다시 석사 과정을 밟기로 했습니다.”


씨는 사회과학원에 개설된 경제사, 거시경제학 등의 전공 가운데 자신이 가장 관심있는 거시경제학을 택했다. 사회과학원 석사 과정은 먼저 지도교수를 정하고 해당 지도교수의 허락을 받아야만 입학시험 응시가 가능했다. 매년 전공별 모집정원은 제한돼 있었고, 학생을 매년 모집하지 않는 과도 있었다. 다행히 칭화대에서 쌓은그럴 듯한 학력과 중국 거시경제학 연구에 대한 열정이 천둥치(陳東琪) 교수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경제연구소 소장이기도 천둥치 교수 밑에서 연구조교를 하며 관련 연구에 참여하는 귀중한 기회를 얻었다. 씨는 교수를 도와 주로 비교경제학과 관련된 연구과제를 수행했다. 일본, 한국, 유럽 몇몇 국가들의 경제발전 모델을 비교·분석하고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1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얻은 것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중국에 사람들은 대부분 현지에서 일을 하며 중국 경제를 알아가곤 하는데, 저처럼 중국의 경제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연구하며 배울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거든요.”


시간이 날때면 법인장은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사진은 가족 여행 당시 찍은 사진 사진/서만교 본인 제공


새로운 길의 개척자

그는 중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 포스코에 입사했다. 그런데 입사 4개월 만에 중국 주재원으로 파견 결정이 났다. “2000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중국어를 알고, 중국에 살면서 공부를 오래 사람이 한국에 많지 않았어요. 지금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이야 다들 중국어가 뛰어나지만 말이죠. 그래서인지 회사도 제가 중국 근무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공부를 끝내고 베이징에 있는 집을 처분해 한국으로 돌아오려 했는데, 그럴 새도 없이 다시 중국으로 복귀하게 됐죠.”


불과 4개월 만의 복귀였지만, 번째 중국행은 씨에게 의미가 남달랐다. 학생 신분일 때와는 달리 이제는 배운 것들을 실전에 활용해 회사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에는 그처럼 박사 학위를 지닌 사람이 적기 때문에 회사 직원들은 직책 대신 그를 박사님이라 부른다. 하지만 박사라는 타이틀은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엄청난 부담을 때도 있다.


그가 중국에 왔을 포스코그룹은 중국 베이징에 하나의 본부밖에 없었다. 그는 주로 정보화와 관련된 시장리서치를 담당했다. 중국 사업전개를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포스코의 장단점을 분석해 많은 합작 기회를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한국에는 자체적인 정보화사업 계열사나 부서가 있는 기업이 매우 많죠. 포스코는 한국 최대의 철강그룹으로서 철강사업 외에도 환경이나 정보화사업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했던 스마트 교통이나 스마트 오피스텔, 검찰청 지문인식 시스템, 와이브로 서비스사업 등이 있죠.”


하지만 중국 시장은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중국의 여러 국가 부처와 접촉을 봤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어요. 포스코의 기술은 100% 자체 개발이 아니라 시스템집적(SI)기업으로서 여러가지 것들을 조합해 만들기 때문에, 중국 표준에 따라 기술을 수정하거나 조정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어요.” 게다가 스마트 오피스나 정보화라는 민감한 영역을 대상으로 외국계 회사가 사업을 벌이기란 더더욱 까다로운 일이었다.


씨는 이제까지 포스코ICT차이나가 걸어온 십수 년의 길을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라는 말로 압축했다. 2002 9 포스코ICT차이나의 전신인 한국 포스데이타(POSDATA) 베이징 사무처가 문을 열었고, 2006 9월에는 포스데이타-차이나가 정식으로 설립됐다. 2008 1 포스코ICT 차이나와 중국 선저우디지털(神州數碼·Digital China)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고, 9월에는 ZTE ITS(中興智能交通) 스마트교통 개발 합작협약을 체결했다.


씨와 직원들은 다양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중국 사업의 방향을 찾아나갔다. “우리가 중국에 진출했을 때는 철강업계의 정보화시스템을 온전히 구축할 있는 회사가 군데도 없었습니다. 중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로 정보화회사는 정보화만 알고, 어떤 회사는 자동화만 알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개를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번의 시행착오 끝에 중국에 자체 개발한 철강 관련 시스템을 판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면서 변화를 모색하기로 했죠. 10 간은 철강산업의 정보화시스템에만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방향을 설정한 2010 12 쉬안화철강(宣化鋼鐵公司·HBIS) 정보화기술 총책임계약을 맺었다. 이어 2011 5월에 포스코ICT차이나 장자강(張家港) 지사가 설립됐다.


70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포스코ICT차이나 사무실 사진/궈사사(郭莎莎)  


철강산업에겐 정보화시스템은 필수

법인장은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철강산업 정보화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철강산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공정이 무척이나 방대한 산업이다. 자동차의 경우 여러가지 부품들을 조립해 완성하지만, 철강산업은 이와 정반대다. 우선 광석과 원료 같은 것들을 가공한 그것을 가지고 수천 가지의 제품을 생산한다. 공정도 여간 어려운 아니다. 마치 요리를 똑같은 원료가 주어지더라도 전문 요리사가 만든 것과 똑같은 맛을 내기 어려운 이치와 같다. 철강산업도 똑같은 원료를 갖고도 용광로의 내부 온도나 풍량(風量) 따라 생산되는 완제품 간의 차이가 무척 크다. 때문에 모든 과정을 제어할 첨단 정보시스템이 필수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객의 주문 형태도 포스코와 고객 복잡한 관계를 만든다. 포스코는 특정 고객의 주문만 받아 제품을 만들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주문을 단계별로 나눴다가 통합시켜야만 한다. 이럴 정보화시스템의 역할이 중요하다.


간의 노력 끝에 회사의 목적과 방향은 더욱 명확해졌다. “중국 철강기업에 최적화된 최신 맞춤형 생산관리 솔루션이라는 해답을 찾아냈죠. 풍부한 프로젝트 관리경험을 바탕으로 전체 프로젝트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전체 사업의 선순환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진하는 것이었어요.” 설명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그는 중국에서 배운 거시경제학이 업무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제가 종사하는 철강업계는 국가의 거시적인 국정방침과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동안 배운 것과 발전개혁위원회에서의 경험 덕에 어떤 일을 분석할 때면 그쪽으로 많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중국이 추진하는 공급측 개혁조치는 일부 철강업체에 타격을 주기도 했지만, 포스코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되었어요. 우리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때는 주문관리와 생산관리 쪽부터 시작했죠. 지금은 정책이 바뀌면서 에너지나 환경보호 쪽으로도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중국 쉬안화철강과 정보집적통합시스템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허페이철강그룹(河北鋼鐵集團), 산둥철강(山東鋼鐵) 르자오(日照)제조기지와도 합작을 하고 있습니다.” 법인장은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며중국에 있는 외국계 기업들은 반드시 중국 국가정책의 방향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식 기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왕징의 포스코센터 사진/궈사사(郭莎莎) 


포스데이터가 처음 설립된 지도 어느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동안 포스코ICT차이나의 중국 현지화 전략은 차근차근 추진되어 왔다. 초기 시장리서치에서부터 자체 엔지니어 배출까지, 한국 본부에서 개발한 모든 프로그램을 수정해 중국에 적용하기까지 모든 단계마다 법인장과 직원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탐구정신이 배어 있었다. “아직 길이 머니까, 서두르기보다는 여유를 갖고 나아가야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중국에 머문 20 년은 중국이 가장 빠른 경제발전을 구가하던 시기라서 동안 중국의 놀라운 변화를 직접 지켜볼 있었던 것도 제겐 행운이었습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은 이웃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이 걸어왔던 길을 중국이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도 종종 보이곤 하죠.” 그는 중국경제가 개혁개방 초기 양적 성장을 추구하던 단계에서 이미 질적 조정 단계로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해 가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겪어왔던 일이지요.”


40 중반인 그는 한국기업 임원들 가운데 비교적젊은 인재에 속한다. 그는 중국에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며 평생의 반려자도 찾았다. 칭화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시절, 외국유학생 아파트에서 인도네시아 화교 출신인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기숙사 일반전화를 통해 만남을 지속했고, 둘은 결국 결실을 맺었다. 지금은 가족이 모두 중국에 거주한다. 패션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아내는 베이징에서 의류샵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틈틈이 가게를 돌본다.


베이징의 한국인들은 대개 왕징에 모여 산다. 주변 친구들도 한국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외는 매우글로벌하게 친구를 사귀는 편이다. 쉬는 날이면 베이징에 사는 외국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가거나 근교로 여행을 떠나고, 파티를 열기도 한다. 그는외국 친구들과 어울리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할 있어 무척 재미있다 말했다.


베이징에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씨는 아직도 스스로 베이징을 모르는 같다고 말한다. 주말이 되면 아내,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 골목을 누비며 좁은 거리를 통해 베이징의 전통 문화를 감상하곤 한다. 그는어쨌거나 우리 가족은 중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매우 즐겁다 활짝 웃으며 말했다.



글|왕자인(王佳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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