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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기적의 역사가 남긴 유산


인민화보

2017-02-13      인민화보

 

2016 9 23, 중국공산당 국가 지도자인 시진핑위정성(俞正聲), 류윈산(劉雲山), 왕치산(王岐山), 장가오리(張高麗) 등이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에서 ‘영웅사시 불후의 걸작-중국 공농홍군 장정 승리 80주년 기념 테마전시회’를 참관하고 있다사진/ 신화사(新華社)란훙광(蘭紅光)
 

80 , 무리의 군인들이 2 만에 12000km 걸어서 목적지에 다다랐다. 바로 1934 10월부터 1936 10월까지 중국공산당이 ‘노농홍군(勞農紅軍)’을 이끌고 이동한 대장정이다.


길고 험난했던 여정에서도 중국공산당원과 군대는 가슴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형용할 없는 육체의 고통이 뒤따랐지만 견뎌내며 서쪽으로, 다시 북쪽으로 나아갔다. 풀과 나무껍질로 허기를 채우고, 짚신과 홑옷으로 추위를 이겨내야 했다. 해발 4000m 높이의 설산 20 개를 넘을 때면 희박한 공기와도 싸워야 했다. 초원을 지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칭짱(青藏)고원 동부의 쑹판(松潘) 지날 때가 가장 그러했다. 면적 15200km2 곳에서 곳곳이 패인 길을 걷고 수렁에 빠지기를 반복해야 했다.


“공기가 희박해질수록 숨쉬기 조차 힘들었다. 말하는 아예 불가능했다. 얼마나 추운지, 숨만 내쉬어도 얼음이 정도였고 손과 입이 퍼렇게 됐다. 걸음만 걸어도 빙하에 빠져 생사를 달리했다. 주저 앉아 헉헉거리며 숨을 쉬다가 자리에서 얼어붙기도 했다. 중국공산당 지도자 한명인 둥비우(董必武) 설산을 넘을 때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국민당 백만 부대의 추격 속에 루딩차오(瀘定橋, 노정교) 건넜던 일은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며, 치열했던 당시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홍군을 저지하기 위해 국민당이 다리의 몸체를 제거했고, 때문에 다리에는 13개의 쇠사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22명의 홍군 전사가 결사대를 조직했고 이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마침내 루딩차오를 확보하는 성공했다. 대장정, 경천동지할 혁명의 위업은 중국공산당과 홍군의 위대한 서사시일 뿐만 아니라 가히 인류 역사의 기적이라 만하다.


홍군을 이끌었던 중국공산당은 목적지였던 산베이(陜北) 도착한 이후 전국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며 일본 침략세력을, 이후 국민당을 각각 격퇴하고 1949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다. 기적과도 같은 장정이 있었기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이라는 승리의 순간이 있을 있었던 것이다.


1921 창당한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의 합작을 통해 봉건군벌세력 타도를 위한 대혁명을 추진했으나 실패했고, 국공합작 또한 결렬됐다. 이후 국민당 반동파의 부패정치를 타도하기 위해 중국공산당은 단독으로 토지혁명과 무장투쟁을 지휘했고, 과정에서 공농(工農)홍군과 혁명근거지는 끊임없이 확대됐다. 1933년에 이르러 장시(江西) 남부, 푸젠(福建) 서부의 혁명근거지를 토대로 발전한 중앙소비에트지역에는 60개의 행정현() 설치됐으며, 곳의 인구수는 435만명, 면적은 84000m2 달했다.


1931 일본에 의해 9·18사변이 발발했을 중국공산당은 항일전쟁과 구국활동에 전념했다. 반면 국민당 정부는 공산당과 군대를 몰살하고자 중앙소비에트지역을 포위하는 병력을 집중했다. 같은 상황에서 당시 공산당 내부의 극좌 교조주의의 착오로 인해 5 국민당 토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불가피하게 장정이 시작됐다. 이후 공산당은 국민당 세력이 약했던 지역과 항일전선으로 나아가 항일구국활동을 전개해나갔다.


1935 1, 중국공산당 중앙은 장정 ‘쭌이(遵義)회의’를 개최함으로써 극좌 교조주의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중국공산당 중앙과 홍군의 지도 지위를 마오쩌둥(毛澤東)에게 위임했다. 중국공산당사() 있어 생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된 ‘쭌이회의’는 중국공산당의 뛰어난 자아반성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며, 중국공산당이 정치적으로 성숙해지기 시작했음을 상징한다.


덩샤오핑(鄧小平) “장정은 어쩔 없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한 있다. 물론 장정이 내부의 극좌 교조주의의 착오와 국민당의 군사적 포위로 인해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공산당원은 항일구국을 위해 장정 중에도 선전과 항일 전쟁을 전개하고 민중의 홍군 참여를 이끌어냈다. 특히 항일구국의 강력한 호소력이 궁벽한 지역까지 울려 퍼지면서 홍군은 민중의 존경과 지지의 대상이 됐다. 또한 홍군은 발길 닿는 곳마다 가난한 민중을 돕고 토호를 타도했으며 재산을 분배하고 세금을 없앴다. ‘홍군을 옹호해야만 승리할 있고, 노동자와 농민이 해방될 있네’라는 동요 가사가 등장하고,‘배 곯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서 홍군을 따르라’,‘홍군은 가난한 이의 구세주’라는 표어가 유행한 것을 보면 당시 홍군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구이저우(貴州) 비졔(畢節)에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지역 저명인사였던 저우쑤위안(周素園)에게 마르크스 레닌 이론과 중국공산당의 주장을 설명했다. 이후 저우위안수는 공산당이 이끄는 구이저우 항일구국군 사령을 맡았고, 홍군의 장정에도 동행했다.


소수민족지역을 지날 때면 ‘총정치부 소수민족 쟁취 공작에 관한 훈령(이하 훈령)’에 따라야 했다. ‘훈령’은 ‘소수민족의 풍속과 문화를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습관을 전사에게 설명해야 한다. 소수민족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한족(漢族)주의의 우둔한 편견을 엄격하게 반대한다. 모든 전사가 소수민족에게 홍군의 주장을 선전하고, 특히 민족주의와 민족평등을 알려야 한다’ 등을 골자로 한다. 윈난(雲南) 중뎬(中甸) 지역에서는 당의 민족·종교 정책을 엄격하게 집행함으로써 홍군은 중뎬 구이화사(歸化寺) 8 노승을 포함한 티베트족 동포의 신임과 지원을 얻었으며, 구이화사는 홍군을 위해 50000kg 식량을 조달해주었다.


미국 기자 에드거 스노우(Edgar Snow) 저서 <중국의 붉은 >에서 ‘최고위 지휘관에서부터 말단 병사까지 먹고 입는 차이가 없었다. 공산당에 고액의 급여를 받거나 부패한 관료, 장군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반면 중국의 다른 군대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 대부분의 군비를 횡령했다’고 기술했다.


장정은 고되고 위험했지만, 중국공산당은 이상을 품고 있었고 담력과 식견이 뛰어났으며 지혜가 있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중국공산당의 기치는 민중을 일깨웠고, 홍군이 가는 길목마다 홍군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935 2 윈난성 자시(紮西) 주민 3000 명이 홍군에 입대했고 같은해 4-5월에는 쓰촨(四川) 장유(江油) 중바(中壩) 주민 6000 명이 홍군에 동참했다. 통계에 따르면 1934 11월부터 1936 9월까지 장정 행군에 따라 홍군에 가입한 사람은 43000명에 달했다.


마오쩌둥은 장정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장정은 유사 이래 최초다. 장정은 선언서이고, 선전대이며, 파종기(播種機). 장정의 승리를 만든 것은 누구인가? 바로 공산당이다. 공산당이 없었다면 장정은 상상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수로 다수를, 약함으로 강함을 이긴 중국공산당은 좌절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시대 흐름에 순응하면서도 굳은 이상을 품었다. 민중의 바람에 기울이면서 희생정신을 잃지 않았다. 이것이 중국공산당이 장정의 기적을 있었던 힘이며, 장정이 중국공산당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또한 같은 유산은 장정 이후의 혁명과 건설의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의 가장 귀중한 재산이 되었다. 중국공산당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장정은 이상과 신념의 위대한 여정이다. 장정은 진리를 시험한 위대한 여정이다. 장정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준 위대한 여정”이라고 말한 그대로다.


2016 10 21, 중국공산당 중앙은 ‘홍군 장정 승리 80주년 대회’를 개최했다. 자리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위대한 장정 정신은 당과 인민이 거대한 대가를 치르고 위대한 투쟁을 통해 얻은 고귀한 정신 자산이다. 우리는 대대손손 장정의 위대한 정신을 기리고, 장정의 위대한 정신을 배우며, 장정의 위대한 정신을 드높여야 한다. 장정의 위대한 정신을 우리 당과 우리 나라, 우리 인민, 우리 군대, 우리 민족은 끊임없이 미래로 나아가는 강대한 정신적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인민은 장정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발전에 자신감을 가지고 인류의 미래에 책임을 지는 , 이것이 바로 장정의 심오한 뜻을 기리는 방법이다.


-본문 일부 사료(史料) <중국 공농홍군 장정 승리 80주년 테마 전시회>에서 인용함


글|리샤(李霞, 인민화보사 부총편집,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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