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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색산업으로 산촌을 부유하게 하다


2020-07-08      

구이저우성 츠수이시 다퉁진 죽편기예체험센터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이자 구이저우성 무형문화유산 츠수이 죽편 전승자 양창친(楊昌芹, 오른쪽) 등이 작업하고 있다. 2012년 현지 정부의 도움으로 양창진은 츠수이 첸서우(牽手)대나무공예발전유한공사를 설립했다. 현재 1년 매출이 400만 위안에 달한다. 직원의 80%가 현지 여성으로 월급여는 최고 7000위안, 최소 2000위안 수준이다. 

 

각 지역마다 가진 자원과 자연환경이 다르다. 산업 발전을 이용한 빈곤 지원은 이런 차이를 바탕으로 각 지역 발전에 상상 공간을 마련해주고 산업 발전의 자주성을 키워준다.

 

구이저우(貴州)성 스첸(石阡)현 번좡(本莊)진의 레이둥(雷洞)촌은 우(烏)강 하류에 위치해있다. 이곳은 면면이 이어진 산을 따라 차로 3시간을 들어가야 도착한다. 산등성이에서 마을 주민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초나무 가지치기를 하며 열매 맺기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곳은 돌산이라 식량을 심으면 잘 자라지 않는다. 산에 야생 산초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산초를 재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충칭(重慶)에서 농업전문가를 초청해 자문을 받았다.” 후시(胡熙) 레이둥촌 당지부 서기는 이렇게 말했다.

 

2014년 레이둥촌 촌위원회와 촌민은 저녁 회의를 10번 갖고 우선 700무(亩)의 땅에 산초나무를 심어보기로 했다. 촌민 슝치구이(熊起貴)는 처음에는 산초를 심어 수익을 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그래서 모두가 산초를 심을 때 그는 몰래 옥수수도 심었다. 후시 서기가 이것을 보고 산초의 첫 수입이 옥수수에 못 미치면 손실을 전부 보상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제야 슝치구이는 ‘억지로’ 산초를 심었다.

 

2018년 슝치구이의 산초나무는 결과기 초기에 진입했고 1무당 2000여 위안(약 34만여 원)의 소득을 거뒀다. 이는 옥수수보다 1무당 400-500위안 많은 것이었다. 슝치구이는 너무 기뻐 다시 후시 서기를 만났을 때  “예전에는 오해해서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 슝치구이는 자신의 토지 30무에 전부 산초나무를 심었다. 레이둥촌 전체의 산초 재배 면적은 6800무에 달한다. 촌은 전문합작사를 설립하고 농민과 생산 계약을 맺어 합작사가 통일된 가격으로 일괄 수매한다. 성과기에 진입한 산초나무는 1무당 최소 7000위안의 소득을 거둔다.

 

2018년 레이둥촌 전체에서 결과기에 진입한 산초나무의 생산액은 60만 위안으로 ‘황산이 청산으로, 돌산이 금산으로, 큰 산이 의지할 산으로’ 확실하게 변했다.

 

구이저우성 츠수이(赤水)시 량허커우(兩河口)진 다룽(大榮)촌은 반 고산지대에 위치해 골짜기와 계곡이 많고 산림 커버율이 90%에 달해 자연 생태가 우수하다. 이런 고  해발·저 수온 환경에서 양식한 어류는 육질이 부드럽고 영양가가 높아 시장에서 큰 환영을 받는다.

 

산시성 핑리현 창안진 진사허촌은 현 전체의8개 심각한 빈곤촌 중 하나다. 정샤오둥(鄭小東) 현위원회 서기는 빈곤가구 샤오가오펑(肖高鋒)의 집을 방문해 특색 농작물 재배를 통한 빈곤 탈출을 제안했다. 

 

2012년 다룽촌은 생태 양어 농민 전문합작사를 설립하고 ‘주예위(竹葉魚)’ 상표를 등록해 생태 양어를 촌민의 소득증대 주류산업으로 삼고 촌전체로 확대했다. 짧은 2년 동안 다룽촌의 102가구 326명이 500무에 가까운 생태 양어를 시작했다. 탕융푸(唐永富) 촌 당지부 서기는 “전통 논농사는 노동 강도가 세고 생산액이 낮지만 생태 양어는 관리만 잘하면 1무당 2만 위안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촌민 우톈구이(吳天貴)는 올해 55세로 다룽촌의 ‘공신’이다. 13년 전 우톈구이는 같은 촌의 왕잉화(王應華), 왕시윈(王錫雲), 왕시빈(王錫彬)과 함께 도로를 내자고 제안하고 절벽에 7.5km 길이의 도로 건설을 도왔다. 지금은 촌을 통하는 도로가 100km에 달해 다룽촌은 외부와의 교류 통로가 열렸다. 우톈구이는 양어장 4무, 대나무숲 20무에서 ‘주예위’를 키우고 있다. 우톈구이는 4무의 양어장에서 매년 10만 위안 정도의 순수입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동생 우톈푸(吳天富)는 외지에서 10년 동안 일하다 2018년 촌으로 돌아와 논을 양어장으로 개조해 양어를 시작했다. 그는 “고향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데 안 돌아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산시(陝西)성 진안(鎮安)현 남서쪽 16km 지점에 위치한 펑서우(豐收)촌은 산기슭에 긴 띠 모양으로 자리잡은 마을이다. 이곳은 ‘풍작’이라는 현지인의 바람을 담은 마을로, 넓은 땅에 파종해도 수확은 늘 적었다. 촌민은 대부분 외지로 나가 일해 가족을 부양했다.

 

근처 4A급 풍경지구인 타윈(塔雲)산에 가려면 필수로 거쳐야 하는 펑서우촌은 관광객에게 숙박할 수 있냐는 문의를 많이 받았다. 2013년 우샹친(吳相琴) 펑서우촌 당지부 서기를 포함한 당원 5명이 향촌여행을 모색해 펑서우촌의 발전을 기획했다. 이듬해 펑서우촌은 여행사를 도입해 본격적인 향촌여행 발전의 길을 열었다.

 

현재 펑서우촌은 ‘뤼수우(綠樹屋)’ ‘후인춘(戶隱村)’ ‘추윈춘(出雲村)’의 3개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가족 체험을 테마로 한 ‘퉁화 모스거우(童話磨石溝)’ 3A급 풍경지구를 만들었다. 여행 서비스와 맞물려 57개 농자러(農家樂, 농촌 체험형 민박)와 농가 여관이 생겼다. 1년 평균 접객 수는 2만여 명으로 일자리 300여 개를 창출했고 1가구당 평균 3500위안 이상 소득이 증대됐다.

 

중국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 대표이자 펑서우촌 당지부 서기인 우샹친은 향촌여행 발전으로 외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소개했다. 그는 “예전에는 외지에서 일하는 사람이 400여 명이었는데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43세인 페이리윈(費禮雲)은 마을에서 여행 사업을 발전시킨다는 소식을 듣고 2013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집이 이곳에 있는데 평생 외지에서 일할 수는 없었다”고 회고했다. 페이리윈의 농가 여관은 1년에 약 1만 위안의 소득을 거둔다. 이것으로 가족의 기본적인 지출을 커버할 수 있다. 2016년 병으로 생계가 곤란했던 페이리윈 가족은 2018년 빈곤에서 벗어났다. 현재 그녀는 촌에서 제공한 공공근로를 한다. 거리 청소를 통해 1년에 4800위안의 소득을 거둔다.

 

마찬가지로 향촌여행을 통해 촌민 라이성화(賴勝華)와 이더샤(益得霞) 부부는 빈곤 탈출에 성공했다. “예전에는 하루에 두부 60근도 다 못 팔았는데 지금은 하루에 300여 근을 판다”고 부부는 말했다. 두부와 양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부부는 1년에 10만 위안의 소득을 거둔다.

 

이밖에 산시성 핑리(平利)현의 차(茶)산업단지, 구이저우성 츠수이시 대나무공예, 구이저우성 스첸현의 런자자이(任家寨) 바웨과(八月瓜)기지, 창룽(長榮)생태산업단지 등 현지 상황에 맞는 산업을 촌에 도입하고 사업을 가구에 연결한 사례가 많다.

펑서우촌 촌민 라이성화(오른쪽)와 이더샤 부부가 만든 신선한 두부. 두부 판매와 양식을 통해 부부는 매년 약 10만 위안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글|모첸(莫倩)   사진|쉬쉰(徐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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