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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추이링, 글로벌 대학의 중국인 서기


2017-11-28      글|후저우멍(胡周萌)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 대표 펑추이링 사진/천젠(陳建)

톈진(天津)대학교 조제학 및 기술대학(이하 톈진대 약대)은 중국의 국가외국전문가국(國家外國專家局)이 승인한 첫 국제화 시범 단과대학 가운데 하나다. 교원 중 75% 이상이 해외 유학 또는 해외 근무 경험이 있으며, 학장은 외국인이 맡고있다. 이처럼 국제적인 단과대학에서 중국인 서기 펑추이링(馮翠玲)은 학교의 중요한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2003년 펑추이링은 약대의 공산당위원회 서기로 임명된 뒤부터 전임과 후임 두 명의 외국인 학장을 비롯해 여러 외국인 교수들과 보조를 맞추며 대학의 글로벌 교육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현 학장인 미국인 제이 시겔은 펑 서기를 “가장 믿을 수 있는 파트너”라 평가한다.

펑 서기는 “사람의 생각은 행동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공산당원이라면 당의 취지에서 명시하는 바와 같이 전심전력을 다하여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 된다”고 말했다.

서로를 이어주는 교량같은 사람
펑추이링이 약대의 서기로 발령받은 다음 날, 곧바로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학장이자 약대의 설립자 중 한 명인 미국 국적의 자오캉(趙康) 교수가 사임한다는 소식이었다. 자오 교수는 오랫동안 해외에서 근무하다 2001년 귀국해 약대 설립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약대의 설립이념을 두고 다른 책임자들과 견해차를 보여 몇 가지 작업들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었다.

자오캉 교수의 단호한 개혁의지를 알고 있던 펑추이링은 그에게 말했다. “약대는 교수님 손으로 직접 세우신 곳입니다. 아직 규모가 작을 때 개혁안도 실행하기 쉬우니, 제게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교수님의 행정 작업에 최선을 다해 협조하겠습니다. 제 협조로도 안 된다고 느끼시면 그때 떠나셔도 늦지 않습니다.”

펑 서기는 업무를 행할 때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원칙을 지키되 실행 방법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자는 것이다. 펑 서기는 사무적인 일은 최대한 자신이 떠맡으며 학장이 오로지 연구와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했다. 위아래 직원과 소통하고, 학교는 물론 외국인 교수들의 요구사항도 낱낱이 파악하여 이들이 제대로 업무를 펼치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외국인 교수들도 펑 서기의 노력을 깨닫고 존중하기 시작했고, 학교 운영도 점점 더 안정되어 갔다. 자오캉 교수는 이런 그를 두고 “펑 서기로부터 진정한 공산당원으로서의 정신적 품격을 보았다”고 표현했다.

현재 80명이 넘는 약대 교직원 가운데 절반 이상은 18개국에서 온 외국인들이다. 펑 서기는 단순히 ‘학교 규정’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속박하는 대신 학교의 요구사항과 외국인 교수들의 생각을 서로 조화시키고자 했다.
 
묵묵한 지원과 세심한 배려
2013년 펑 서기는 신임 학장인 제이 시겔 씨를 맞이하기 위해 이전에 시겔 교수가 근무했던 스위스 취리히대학 사무실 모습 그대로 그의 사무실을 꾸몄다. 취리히 대학을 방문했을 때 찍어두었던 사진 속 모습대로 사무실을 재현한 것이다. 펑 서기는 “시겔 교수는 중국어를 못하시니 중국에 처음 왔을 때 모든 것이 낯설 것이다. 시겔 씨가 충분히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우리 파트너들의 진심이 닿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신임 학장이 부임한 뒤 약대는 외국인 교수를 대거 모집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을 때는 한 해에 10명 넘게 채용하기도 했다. 펑 서기는 “정말 힘든 과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외국전문가증 발급, 주택임대차계약, 자녀입학 등 펑 서기는 외국인 교수들의 근무와 생활 여건 조성을 위해 큰 일 작은 일 가릴 것 없이 분주하게 뛰며 꼼꼼하게 모든 일을 처리했다. 러시아어를 배운 펑 서기였지만, 외국인 교수들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대학 직원들이 영어로 사무를 보도록 장려했다. 자신부터 먼저 자비를 들여 영어학원에 등록한 뒤 일주일에 4번씩 밤 시간을 이용해 수업을 들었다. 외국인 교수들이 국제교육대학에서 중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고, 벨기에 교수인 얀 필립과 중국인 아내를 위해 따뜻한 중국식 혼례를 치러주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국적의 교수 바오젠민(包建民)의 실험도구 구입을 위해 여러 차례 세관과 연락하는 등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인 교수 마크 올슨은 “펑 서기는 아주 세심하게 일을 한다. 덕분에 중국에서 일하는 것이 아주 유쾌하고 즐겁다”고 말했다.

교수들에 대한 관심 외에도 펑 서기는 학생들의 성장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약대는 갓 입학한 신입생들의 학업과 생활상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멘토링 및 선후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교수 한 명당 2~3명의 학생이 배정되어 전공학습을 지도받거나 상담을 받는다.

또한 고학년의 우수학생 대표 한 명당 하나의 신입생 숙소를 배치해 후배들에게 학습과 생활에 관한 조언을 하도록 했다.

‘다소 더딘’ 학생들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관심을 쏟았다. 펑 서기는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국가2급 심리상담사 자격시험에 응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자격시험 준비학원에서 최고령 학생이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지금까지 약대에는 학업문제로 자퇴한 학생이 한 명도 없다. 취업률은 여전히 100%이다. “학생 하나 하나를 잘 지도하고, 아껴주고, 존중하고, 믿어주어야 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펑 서기의 말이다.

솔선수범의 힘
새벽이 되면 약대 강의동 앞에서 공유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펑 서기를 만날 수 있다. 모든 교수와 학생들은 펑 서기를 ‘항상 만면에 웃음을 띤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2001년 말, 펑추이링은 유방암 중기 판정을 받았다. 1년 간 화학치료를 받고 몸이 막 회복되기 시작할 무렵, 서기직이라는 중임을 맡게 됐다. 펑추이링은 학교가 자신을 서기로 임명한 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2011년 유방암이 재발했을 때도 치료를 받으면서 근무를 계속했다. 독한 화학치료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자 가발을 쓰고 출근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늘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펑추이링은 1964년 랴오닝(遼寧)성의 한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어릴 적 아버지는 마을의 지부서기(支部書記)를 맡아 마을에서 일어나는 각종 다툼을 처리하곤 했다. 지금도 자식이 어디 가서 남한테 밉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그는 “우리 공산당원들은 ‘성실’이라는 말을 가장 중시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언급하며 어머니를 안심시킨다.

초등학교 때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의 추도회에서 평소 엄하기 그지없던 아버지가 추도사를 읽으며 눈물범벅이 된 모습을 보았다. 처음으로 목격한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마오 주석과 당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죠.” 펑 서기는 회고했다.

1982년 그는 톈진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금요일이 되면 담임 교수님이 과일과 간식을 들고 숙소로 찾아와 학생들과 함께 한 주의 학업과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담임 교수님은 공산당원이었어요. 저희를 자식처럼 아껴주셨죠. 그때 당원이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거구나 하고 느꼈어요.” 대학교 2학년 때 그는 과에서 처음으로 입당 원서를 냈다.

지난 14년 간 펑 서기는 약대의 공산당위원회를 이끌어 왔다. 처음 1개의 지부에서 시작해 지금은 교직원과 학부생, 대학원생이 포함된 총 10개의 지부 소속 400여 명의 공산당원을 길러냈다. 또 당·정 연석회의 제도를 만들어 우수한 당원 청년교사를 선발·임용하고, 그들을 외국인 교수의 연구조교로 적극 추천해 당원들이 개혁적 발전과 교수 연구에서 중추적인 역량으로 성장하게끔 했다. 현재 약대 전 교직원과 학생 가운데 170명이 넘는 공산당원들은 기초적인 인민복무 영역에서 모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약대 공산당위원회와 각 당 지부가 행사를 개최할 때는 종종 외국인 교수들을 초청해 함께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덩잉차오(鄧穎超·등영초)기념관이나 핑진(平津)전투기념관을 견학하곤 한다. 당헌(黨憲)과 당규(黨規)학습, 중요 강화(講話)학습, 적격당원 되기 행동 등 이른바 ‘두 개의 학습과 하나의 행동(兩學一做)’교육 때는 시겔 학장에게 책 <시진핑, 국정운영을 말한다(習近平談治國理政)> 영문판을 선물하기도 했다. 펑 서기는 “시겔 학장이 휴가 기간 책을 다 읽고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펑추이링에게 ‘서기’라는 칭호는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뜻한다.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 대표에 선발되고 나서 이러한 책임은 한층 더 무겁게 다가왔다. 펑 서기는 얼마 전 학교 원로 당원과의 좌담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감회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국가를 생각하는 원로 당원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당대회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분들이 제게 여러 당부를 남겨주셨습니다. 모든 분들의 생각을 반드시 당 중앙에 잘 전달하겠습니다.”


글|후저우멍(胡周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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